이 그림을 그리고 바로 다음날 인터넷으로 주문한 향수와 워커부츠가 도착했다. 충동적으로 지르긴 했지만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물건 2개 다 어딘가 애매했다. 실제 꽃향이 난다던 향수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향이 강해서 뿌릴 때 굉장히 신중해야 했다. 옷 끝에 살짝 뿌려야 적당한 향기가 올라왔다. 향이 얼마나 강한지 뿌리지도 않고 올려만 놨는데 향수가 있는 내 방에 들어가면 그 향기가 난다. 2만 원 대 가격에 산 저렴이 워커부츠는 모양도 예쁘고 정사이즈로 발이 딱 맞았지만 하루 종일 신고 다니니 양쪽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혔고 벌써 앞 코에 주름이 가기 시작했다.
주말에 친구와 같이 간 초밥 맡김 차림은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초밥을 다양하게 먹어 볼 수 있어 좋았다.(상상한 광어 초밥은 나오지 않았고 굉장히 특이한 어종으로 다양하게 나왔다.) 그날 나도 이 식사 때문에 멋을 낸다고 부츠를 산 건데 친구도 비슷한 생각으로 무릎까지 오는 롱부츠를 신고 왔다. 오랜만에 나들이에 몇 년 전 사 두고 한 번도 신지 않은 롱부츠를 꺼내 신었다는데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세월의 무게를 정통으로 맞은 '그 롱부츠'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부터 겉 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한다. 친구가 너무 창피해했지만 나는 그냥 좀 낡아 보이는 롱부츠 정도로 보여서 걱정 말라고 근심을 덜어주었다. 그런데 초밥을 먹을 동안 계속 친구 주변에 조금씩 가죽 가루가 떨어지더니 밥을 먹고 밖을 나서니 그렇게 낡아 보이지 않던 롱부츠는 위쪽까지 다 갈라지고 찢어져 걸레짝이 되어있었다.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신겨져만 있던 신발이 한순간 말 그대로 '거지발싸개'가 되니 그 모양이 너무 웃겨 한참을 배를 잡고 웃었다. 친구는 근처 신발가게에서 비슷한 신발을 아주 싸게 득템하고 멋진 새 롱부츠로 갈아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대했던 일들도 모든 것이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작은 사건도 친한 사람과 함께하니 배를 잡고 웃게 만드는 추억이 된다. 2022년도 그런 순간들과 기억들로 내 삶이 꾸려지지 않을까? 나쁜 기억에 밑줄 그으며 곱씹어 기억하며 내 신세를 한탄만 하지 않고 좋은 기억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안아 들어 2022년을 향해 당차게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