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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Dec 20. 2024

위미 동백군락지에 동박새 소리  

동백꽃 소식이 간간 들려왔다.

일단 먼저 방문한 곳은 동백 수목원.

차도에 인접해 있기에 들리기 쉬운 장소다.

여기는 토종 동백보다 애기동백이 주종을 이뤘다.

꽃이 한창일 때는 나무 전체가 한 덩어리 꽃묶음처럼 보일 정도다.

둥글게 잘 전지된 동백나무들 가지런히 열 지어 섰으나 꽃소식 다문다문, 눈바람에 머뭇거리나.

하긴 만개한 꽃보다 더 장관이기로는 꽃잎 낙화되어 나무 아래 둥글게 깔려있을 적이다.

꽃잎이 난분분 휘날려 떨어진다고?

그럴 리가?

서귀포 와서 처음 동백꽃 보러가는 길에, 낙화 풍경이 멋지다는 말을 듣자 의아했다.

통상 동백은 통째로 툭! 지는 꽃이다.

처연하다거나 비감스럽다면 모를까 멋지다는 표현은 낯설밖에.

양광모 시인이 읊었듯,

"이별은 동백꽃 모가지째 떨어지듯이 하잔께

말하였더니 그 여자 눈물만 송이송이 떨어뜨리며

이제 막 땅에 떨어진 동백꽃 하나 주워들더니

참, 징하요, 말하는 것이더라"



화사하기로 치자면 애기동백, 단아하기로는 토종동백 따를 수 없다.

하므로, 토종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룬 위미마을 안동네로 들어갔다.

여기야말로 진국, 진짜 찐인 명품 동백숲이다.

나지막한 돌담 두르고 그 아래 활짝 핀 털머위 꽃길도 아름차게 가꿔놓았다.

키대로 자란 동백 거목, 서로 어깨 결며 어우러진 길이 한참을 이어졌다.

북향길 칠칠한 동백은 시침 뚝 떼고 침묵 모드다.

동쪽으로 돌수록 붉은 기운 더러 보였다.

토종 동백꽃이다.

눈 쌓인 한라산 소식 하마 들었던가.

기름기 잘잘 흐르는 동백 잎새 사이로 붉은 꽃잎 살몃 연 단정한 자태의 꽃송이 곱다.

짙푸른 잎새와 새빨간 꽃송이 조화도 선연히 예서제서 고개 내민다.

그러나 아직은 철이 이르다며 반쯤만 번 송이도 있고, 입 야무치게 오므린 꽃봉오리 겨우 새끼손톱 크기로 새침을 떨기도 한다.

성급하게 무슨 동백 타령이냐고, 여태 음력으론 동짓달 스무날이라며 딴전 부리지만 이만한 시혜도 고맙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겨울의 정점이자 작은 설이라는 동지, 핕죽 먹는 날이다.

낮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자 밤이 가장 긴 까닭에 황진이는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 베어내여..." 읊었고. 

다시 동백꽃을 노래한 시는 낙화 정경.

문인수 시인이 명년 이월쯤에나 해당될 한, 버얼써 동백 지는 까닭을 설파했으니 한번 들어보자.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어머 어머~ 저 맑은 새소리는....

뜻밖의 행운이 아닐손가.

이름만 들어본 동박새, 선운사 밀밀한 동백 숲에서 새소리가 나면 하마나 싶어 귀 기울이곤 했었다. 

그 동박새를 위미 동백군락지에서 드디어 만났다.

키 큰 동백나무 품에 깃든 채 지저귀는 새는 동박새, 여울져 흐르는 소리조차 향그럽다.

화사하게 흐드러진 외래종 카멜리아가 아닌, 토종 동백 조신한 꽃송이 깊숙이 갈무린 꿀만을 탐하는 동박새.

재재거리며 화심 깊은 앙가슴에 부리 박고 화밀을 빨았다.

크기는 참새만 한데 머리 부분과 잔등은 연 녹두빛, 배 부분은 베이지색 그것도 파스텔 톤으로 부드러웠다.

눈자위 빙 둘러 하얀 테 선명하고 가늘고 긴 부리를 가진 동박새는 삐 뽀르릉 목청도 매우 청아했다.

동박새에 함빡 빠져 목 뻐근하도록  고개 빼고 한참을 동백나무 올려다보았다.

키 큰 동백나무 가지 흔들어대는 바람결에 놀라 새들은 동시에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사철없이 부겐벨리아며 온갖 향그러운 꽃 피어나는 캘리포니아에 흔한 벌새, 

집뜰에도 자주 날아왔지만 워낙 움직임이 빨라 사진에 담지를 못했다.

그보다는 덜 나붓대지만 동박새 역시 몸짓 분다운데다 행동 민첩했다.

묘기 부리듯 마치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꿀을 빨기도 했으나 순간포착은 어려웠다.

동박새는 번식기인 여름엔 산에서 살지만 겨울철엔 마을로 내려와 나무 열매와 동백 꽃물을 양식 삼는다고. 

벌 나비 날지 않는 한겨울에 꽃잎 여는 동백은 독특하게도 조매화(鳥媒花)다.

바람과 곤충에 의해 가루받이를 하는 여느 꽃들과 달리 동백은 친구 동박새가 있어 수분(受粉)이 가능해진다.

동백은 그처럼 동박새 덕에 씨앗 맺을 수 있고 동박새는 추운 겨울 이겨낼 열량 높은 꿀을 얻는다.

서로가 나눔 통해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관계인 악어와 악어새.

그처럼 동백과 동박새는 그래서인지 이름도 닮았다. 



동백나무 군락지를 감싼 돌담이 트인 공간.

안을 들여다보니 거긴 조성된 지 오래지 않은 애기동백나무 숲, 다문다문 연분홍빛 다홍빛 애기동백꽃  환하게 피었다.

발치에는 샛노란 야국 소담스레 깔았고.

지난해만 해도 잡초 덤불져 누웠더니만, 붉은 꽃길 아래 해맑은 노랑 국화꽃 가꾸기로 한 발상 참하다.

이날 슬그머니 취해버린 것은 야국 향인가,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 같아 돌담 가로 나와 토종동백 요리조리 찍어댔다.

....모가지째 툭 떨어져

이래 뵈도 나도 한때는 꽃이었노라.

땅 위에 반듯이 누워 큰소리치며 

사나흘쯤 더 뜨거운 숨을 몰아쉬다...

어느 시인은 떨어진 동백꽃에 생명을 넣어주기도 하던데.

차마 사진 한 장 얻자고 동백꽃에게 '연출'까지는 못 시키겠더라는. 

석양 무렵, 길어진 그림자 이끌고 성큼성큼 돌아오는 길.

온화한 해양성 기후대라 당도 특히 높은 귤맛을 자랑하는 남원읍 위미리. 

먼데 눈을 인 한라산 봉긋하고 위미마을 집집마다 감귤 샛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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