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월이면 즐기던 잔재미

by 무량화


시월 이후 프런트를 장식했던 국화분과 호박이며 밀짚 허수아비를 치우고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바꾼 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현관을 장식하는 전나무 리스에는 전구 불 반짝대기 시작했고...


은빛 금빛 종을 달고 포인세티아와 솔방울, 선물 상자 등으로 프런트 장식하는 요런 소소한 즐거움이 기다리는 12월.


철 따라 다른 표정을 연출시키는 잔재미가 있어 일터의 하루하루가 팍팍하지만은 않다.


계절에 맞는 액자를 바꿔달고 인테리어 절기 따라 바꾸면 손님들 반응은 제각각이다.


어머, 가을이네!


여긴 어느새 크리스마스네요!


아침나절에 들린 쟌 씨는 쿠키와 캔디가 든, 북구 풍경화 멋진 박스를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놓고 갔다.


잠시 후 아브라함 씨가 메리 크리스마스! 하면서 붉은 포인세티아 화분을 카운터에 두고 갔다.


런던에 출장을 갔다 온 안나 씨는 유대인이지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왔다며 포장이 화려한 초콜릿을 전하고 갔다.


지난 댕스기빙데이 때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만들어 그간의 고마운 마음 담아 고객들에게 선물하였다.


꽃 선물이라는 게 받으면 누구나 입이 벙그러진다.


한 사람에게만 건네는 꽃이라면 의미 오해할 수도 있고 따라서 괜한 부담이 되겠으나.


하지만 오는 커스터머마다 빠짐없이 안겨주는 댕스기빙데이에 맞춘 사은선물일 따름이다.


목요일이 댕스기빙데이라 그 전전날부터 미리 준비해 놨다가 꽃을 돌렸다.


그럼에도 꼭 선물해야 할 분이 빠지곤 하는데, 매주 금요일이나 토요일에만 오는 단골이 있기 때문이다.



꽃 선물을 못해 아쉽던 몇몇에게는 크리스마스 기해 리스를 만들어 선물했다.


여러 가지 데코레이션에 화려한 리본 장식을 단 싱싱한 생 전나무 리스에서는 상긋한 냄새가 났다.


왜 아니 그러하랴, 신선한 송진 향 풍기는 생 솔방울도 달리니.


푸른 침엽수 자체만으로도 어쩐지 한 해 동안의 건강을 지켜주는 부적 같은 의미를 지닌 리스.


리스 선물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타이타닉이란 닉 네임으로 불리는 부부 손님이 있다.


대서양에서 침몰한 호화 여객선인 타이타닉호.


그보다는 얼마 전의 영화 타이타닉에서 두 남녀의 죽음을 넘어선 사랑의 힘을 떠올리며 지은 이름이다.


즉각 그 이름을 붙이게 된 건 남편의 이름이 잭으로 불려지기에 (남주인공 이름도 잭) 더구나 주저 없이 타이타닉이 된 것이다.


그들이 유대인인 줄 알게 된 것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일로 크리스마스 장식인 리스를 선물했더니 노댕큐! 하며 사양한다.


의아해하는 내 표정에 자신들은 쥬이시라고 일러준다.


뉴저지 체리힐에는 쥬이시가 많이 사는데 그전까지는 백인들은 무조건 다 크리스천인 줄 알았다.


유대인들의 민족종교인 유대교 곧 쥬디즘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과문의 소치로 무지하게도.


해서 연말에 해피뉴이어! 하며 건네준 꽃바구니는 얼마나 좋아하던지 남자분까지 허그해도 괜찮냐고 묻는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그들식 인사니까 당연 오케이~


그들 선물에 유달리 신경 쓴 이유는 지난여름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오면서 그곳 미술관에 한국관 개관 기념으로 전시회가 열렸더라며 거기서 훈민정음 목판본 탁본 한 점을 구해다 주어 감격케 했던데 대한 답례로서다.


교사였다는 부인과 회계사에서 지금은 은퇴하여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남편은 항시 어디든 동부인해서 다닌다.


우리 집에 올 때도 마찬가지, 차에서 내리는 아내를 마치 왕비 모시듯 보필한다.


자신이 먼저 차에서 내려 아내 쪽 차 문을 열어준 뒤 아내가 나오도록 도와주는데 젊은애들 데이트하듯 아니면 서양 영화에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는 신사같이 아주 자연스레 몸에 밴 행동을 보인다.


윗옷을 입을 때도 거들어 받쳐주며 마치 시종처럼 일일이 챙겨주는 살뜰한 아내 사랑.


나갈 때도 마찬가지, 얼른 문을 열고는 아내가 나가기 편하도록 문을 잡고 서있다가 다시 차문을 열기 위해 먼저 차로 향한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를 만난 나로선 평생도록 기대할 수 없는 배려이며, 동시에 멋없는 충청도 여자로부터 사근사근한 대접은 애당초 기대하지도 않았을 테니 피장파장.


여왕 대접을 받는 아내도 실제로 상냥하고 정겹기 그지없다.


옷 기장을 고칠 때도 남편에게 ”잭, 이 길이가 적당해요?” 혹은 “보기 괜찮아요?” 뒤돌아보며 묻고는 한다.


그러면 남편은 언제나 으음, 좋아~ 한마디뿐 얼굴 가득 미소를 담은 채로 넌지시 건너다본다.


바라보는 눈가에 가득 고인 은근하고도 깊은 사랑.


오래 산 부부 사이라기보다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연인들처럼 다정한 커플이다.


칠십이 훨씬 넘은 노부부는 어찌나 정이 좋은 잉꼬부부인지 곁에서 보기에도 참 좋다.


하느님이 사람을 지어놓고 ‘보기에 좋았더라’ 하셨다지


사람들마다 부부들마다 정답고 아기자기하게 살면 역시 보기 좋은 그림 한틀인 것을….



퇴근 후엔 한국 나가기 전 딸 집에 김장을 해주고 있는 소피아 씨 댁 모임에 갔다.


네 박스의 배추를 왕소금에 절여 씻고 무채를 치고 갓을 썰고...


특유의 김장 양념 내음이 밴 아파트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했다.


몇 이서 팔 걷어붙이고 김장을 도와 저녁 전에 일을 마무리지었다.


딤채에 배추김치 차곡차곡 일곱 통, 굵은 깍두기 한 통, 총각김치 두 통.


그녀는 딸내미네 가족들 겨울나고도 남을 충분한 양 저장해 놓기 전 미리, 집집에 병 김치 한 통씩을 몫지어 놨다.


항시 나눔에 앞장서는 넉넉한 큰손의 소피아 씨다.


하나뿐인 아드님을 사제의 길로 보낸 모정, 그녀는 기도와 봉사를 생활화하고 있는 모범적인 신앙인이다.


미국 생활에서 이리 따스한 이웃들 다수 만날 수 있었으니 난 여러모로 러키한 사람이다.


귀갓길, 어둠이 깃들자 집집의 크리스마스 장식 불빛이 영롱하게 피어올랐다.


뛰노는 사슴, 눈사람, 말구유, 눈썰매, 고드름, 촛불 형상 등 동화 같은 정경 제 나름 연출시켜서....2003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 모습 그대로, 더 브로드 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