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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지면서도 보시 아름다이
by
무량화
Jan 10. 2025
한동안 겨울날씨답지 않았다.
기후변화로 삼한사온도 실종되고 말았는가.
십도 가까이 기온 오르니 동백꽃도 한꺼번에 화르르 폈다.
그러나 들쑥날쑥 변화무쌍한 동절기다.
갑자기 한파가 몰아닥치며 기온이 곤두박질을 쳤다.
강풍 휘몰아치자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다.
대설주의보도 발효됐다.
영하권 저 아래로 온도가 뚝 떨어진다고 했다.
엄포나 괜한 으름장이 아니었다.
불온한 음모라도 꾸미듯 잿빛 구름장이 자꾸 모여들었다.
구름장 틈새로 언뜻언뜻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 빛깔은 맑지 않고 시퍼러둥둥 했다.
빈 나뭇가지 흔들어대는 삭풍 소리는 기이쩍고도 음험스러웠다.
가랑비는 진눈깨비로 진눈깨비는 우박이 되어 대지를 난타했다.
어둠이 내리자 눈발 난분분, 실제로 맹추위가 엄습했다.
기상예보가 아니라도 잔뜩 움츠러들게 하는 날씨였다.
만반의 대비를 하고는 따습게
방에서만 있
었다.
이튿날 아침은 의외로 날씨 순했다.
위미리로 동백꽃을 보러 갔다.
정확하게는 하르르 흩날리고 있다는 애기동백 꽃잎을 보러 갔다.
그때 우리는
너나없이
자동으로 꽃길만 걷게 되느니.
장소는 위미리에 있는 제주동백수목원 바로 아래에 있는 동백 숲이다.
8천 원으로 오른 입장료를 받는 수목원과 달리 여긴 가격이 3천 원인데
저희들끼리 자유분방하게 피고 진다.
하나같이 깔끔하게 다듬어진 수목원은 조경사가 동글동글 전지를 시켰지만 이쪽은 덜 다듬어진 게
외려 맘에 든
다.
한결 자연에 가까워, 미덥고도 편안한 기분으로 꽃길 거닐며 여유만만하게 둘러볼만한 동백숲이다.
주차장은 이미 만원인 듯 도로변까지 줄지어 선 자동차들.
차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꾸역꾸역 한결같이 옆집으로 몰리니, 게서 꽃보다 사람 구경은 푸지게 하지 싶다.
몇 번 와봐 이곳을 잘 아는 이들은 그 집 대신 옆으로 빠진다.
특히 낙화 밟히지 않게시리
인파
복잡하지 않아 속닥하게 사진
찍기도
마침맞은 곳이다.
온 나무가 꽃무더기인 칠칠한 동백꽃에다 낙화 진 동백 꽃잎들이라니.
위미리 동백숲에 들자 눈앞이 환해졌다.
예상대로였다.
최적기에 제대로 맞춰서 왔지 뭔가.
이번 주가 절정기인 듯
피고 지고 끊임없이 또 피고 지고.
하르르 떨어진 꽃잎들 흙바닥 덮고도 질펀하도록 두터이 깔렸다.
그리도 세찬 바람에 후드 꼈으니 그 연한 이파리가 어이 견디리.
나무마다 제 발치에 둥그러이 떨군 꽃의 잔해 숫제 낭자했다.
겹겹이 쌓인 꽃잎, 그 위로 하염없이 떨어져 덧쌓이는 동백꽃 이파리들.
사태진
꽃잎이 온데
흥건했다.
꽃나무 발치마다 둥글게 내려앉은 꽃잎이 마치 꽃잔디 소복이 핀 듯 연연하다더니 과연 그랬다.
밀려드는 구경꾼에 치이지 않으려고 참새 동박새 모두들 이쪽으로 피신 온 듯 재재거리는 새소리 청량했다.
동행한 도반도 연두색 동박새를 여기서 처음 봤다며 한참이나 새 자취를 찾아다녔다.
희뜩희뜩 눈발이 날렸다.
눈보라 아니라서 새소리 어우러지는 동백숲 거닐며 동백꽃과 노닐었다.
꽃잎 위에 눈이 쌓이면 얼어서 칙칙해지고 말 저 꽃다홍 어여쁜 색조, 정말 잘
왔다
.
초록 당의에 다홍치마, 부챗살 펴 들고 맴돌며 나붓나붓 춤추는 무희들 같았다.
저마다 열두 폭 치맛자락 활짝 펴 사뿐히 사려 앉은 자태 아리따웠다.
절정기 지난 꽃들은 시나브로 지고 있었다.
작은 바람결에도 꽃비 되어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는 꽃이파리들.
그때였다.
꽃길 저편 끝에서 영화 <미션>의 메인 테마곡인 '가브리엘의 오브에'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선율을 따라가자 모자를 눌러쓴 중년의 남자가 플루트를 불며 홀로 동영상을 찍는 중이었다.
우리는 그의 연주를 방해하지 않으려 발자국 소리 조심하며 멀찍이 물러났다.
소박한 동백
숲을 찾은 모두에게 꽃 공양으로 아낌없이 선을 베풀어주는 자비로운 동백의 보시.
그에 답하듯 플루트는 아름다운 화음으로 꽃의 보시에 찬탄의 뜻으로 음악 공양을 올리는 거 같았다.
중세 기사처럼 정중히 예 갖춘 자세, 한쪽 무릎은 땅에 대고 다른 쪽은 세운 채 경의 표하는 듯한 모습이 꼭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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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플루트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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