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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래떡 뽑아냅디더

by 무량화

갱제가 영 안좋다캐싸도 설 대목은 역시 대목이라카이. 전만큼의 경기가 되살아나려면 어느 하세월일까 싶을만치 어림없다지만 그래도 모처럼 사람사는 거 같네예. 백화점 선물 코너가 붐비고예, 수퍼마켓 매장이 풍성하고 재래시장은 아직도 여전 흥청댑디더. 시장 여기저기 구경다니다 어느 골목에 들어섰더니, 시루에서 떡 찔때 나는 내음이 후각을 살몃 자극하더라꼬예. 동시에 예전 설무렵의 풍속도 하나가 긴급 소환됩디더. 집집마다 설이 다가오믄 멥쌀 한 말을 불렸다가 방앗간에 이고 가서 가래떡을 뽑아왔지예. 길게 줄을 서서 차례오길 기다리노라면 춥기도 오지게 추었다 아잉교.

어무이 따라온 아이들이사 앞뒤로 뛰어댕기싸니 그 정도 한파 쯤이야 별거 아니었다카이. 하긴 방앗간에서 뿌옇게 밀려나오는 김을 바라보노라면 섣달 쌩하게 시린 설한풍도 녹아들었지러. 무엇보다 얼마후면 멥쌀이 뽀얀 떡가래로 바뀌어진다는 기대감이 있어 추위고 뭐고도 개의치 않았더라예. 다된 떡 소쿠리를 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줄지어 누운 떡가래 중 한가닥을 쑤욱 잡아댕기던 그 느낌! 따끈하고 보드럽고 쫄깃거리는 떡을 한입 베어물던 선연한 기억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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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과 달리 말쑥해진 현대식 방앗간에 들어서자 흐미~ 진짜루다 떡가래를 줄줄 뽑아내고 있습디더. 낱개로도 파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기에 두 줄만 싸주이소, 하고는 일금 5천원을 지불한 뒤 떡이 식을세라 곧장 집으로 직행했답니더. 흰떡은 굳기 전 몰랑거릴때 먹어야 제맛이거든예.

예전엔 장작불 지펴 가마솥에서 고아 낸 조청에 찍어먹었지만 있는 건 꿀 뿐이라 덜어놓은 꿀에 떡가래를 꾹 찍어 먹어보이 허어~. 산천 의구하듯 떡가래는 옛 그대로이건만 입맛이 변했는지 영 옛맛 아니 납디더. 역시 가래떡엔 조청이야, 하면서 애꿎은 꿀 타박만 했다는...결국 굳어버린 떡가래는 설날 아침거리 떡국으로 쓰자며 어슷하게 썰어두었다는 .......



내일은 저마다 모두에게 주어진 선물인 2025년 새해 아침. 한 해의 첫날을 뜻한다고 해서 연두(年頭) 원단(元旦) 세수(歲首) 등으로도 불리는 설날이라예. 아주 오래전 할아버지 생존 당시이니 당연히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삼았지예. 그 무렵이면 흰떡 가래를 뽑아내는 방앗간의 발동기 소리와 하얀 수증기가 명절 기분을 제대로 돋우었다카이. 5일 장날 포목점 설빔 거리와 잡화점의 제수용품도 푸짐하게 쌓여갔고예.


설날 아침, 차례상 진설을 마치고도 할아버지는 곧장 차례를 올리지 않았지예. 행여나 하고 할아버지는 교사였던 작은 아버지를 기다리셨지예. 셋째 삼촌이 바쁜 일로 차례 마치고 서울 올라가야 한다며 서둘지 않으면 할아버지는 하염없이 작은 아들을 기다리실 참이었다카이. 60~70년대엔 생산과 수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며 한동안 원 설날인 구정을 폐지시켰는가 하면 때론 설날이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답니더. 조국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정부에서 신정을 적극 권장하며 공직자들의 이중과세를 원천 차단하던 때의 이바구랍니더.


미국 와서 첫해 추석날을 맞으며 참으로 심회가 수수하니 착잡했다카이. 차례는커녕 명절 기분 비슷한 것도 느낄 수 없는 타관에서 꼼짝없이 가게나 지키고 있자니 못내는 추연한 기분마저 들지 뭡니껴. 대체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였고예. 달력에 빨간 표시가 된 추수감사절이 명절인 미국에서 추석날은 아무렇지 않게 무시되는 평일이지러. 올 설날 역시주중에 들었으이 일터에서 여느 날이나 마찬가지로 일을 해야 하는 교민이 부지기수인기라. 그러니 격식에도 안 맞고 솜씨 어설프거나 말거나 따끈한 떡국 한 그릇과 나박김치 미국으로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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