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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숲길과 외돌개, 산에서 바다로

by 무량화 Feb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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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분단장을 한 백록담 선명하다.

쾌청한 날씨에 대한 예우 차원이랄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느지막하게 사려니숲으로 들어섰다.

지 명상의 숲이란 이미지가 겹쳐지는 이곳.

이름 자체의 어감에서 절로 사색, 선정, 묵상,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해 마음 끌리는 곳이다.

쭉쭉 치솟은 삼나무 숲길은 온통 하얀 눈길이자 설원.

게다가 투명한 공기는 청량하기 그지없다.

빼곡하게 들어찬 삼나무가 피톤치드나 테르펜 정향  저마다 풀어내서이리라.

향 자체에 살균·살충효과가 있다니 심신 자동으 쇄락해지는 산림테라피를 받게 된다.

신성한 숲이란 뜻처럼 새하얀 길은 정결했다.

나무 새 바람, 그 어디에도 삿된 기운 감히 범접키 어려운 분위기다.

하여 공인받았으리라.

사려니 숲길은 200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생물권 보전지역(Biosphere Reserve)이기도 하다.

단기 여행자들도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트래킹 코스라 부담 없이 들르는 사려니숲.

그래서인지 숱한 발걸음이 다져놓은 길마다 빙판이 돼 매우 미끄러웠다.

무장애숲길 주변에는 사람들도 많지만 눈사람도 여기저기 서있었다.

한편 눈길에 찍힌 노루 발자국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강아지만 눈에서 뛰노는 게 아니라 산짐승들도 눈벌판 놀이터 삼아 밤이나 새벽 되면 겅중겅중 뛰노는가 보다.

미로숲길에는 주로 사진 찍는 이들이 거닐고 있었다.

조금 더 숲 안으로 들어와 있는 위치라서 인지 인적 뜸해 벤치에는 소복 쌓인 눈이 그대로였다.

아이젠을 챙겨 오지 않아 너른 산책길 따라 멀리까지는 걷기가 상그러웠다.

그저 앞머리에서만 서성대다가 미끄러질세라 조심스레 살금대며 찻길로 나왔다.




기온은 6도, 겨울날씨치고는 포근했다.

오후 들어 햇살 기웃하면 대뜸 서늘해지는데 어쩐 일인지 찬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온 김에 노을 내리는 외돌개로 가볼까.

일몰시각은 여섯 시 십 칠 분, 시간도 맞춤 맞다.

외돌개 못 미쳐 황우지해변부터 들렀다. 

멀찌감치 떨어진 새연교와 문섬 같은 인근 배경이며 물빛 특히 고와 즐겨 찾던 곳이다.

작년부터 붕괴위험 때문에 폐쇄시켜 위에서  눈맞춤만,

바람의 언덕과 송림숲 지나 일몰에 맞춰 외돌개 쪽으로 갔다.

벌써 외돌개에는 석양 마중하러 나온 이들이 여럿 모여있었다.

안전난간 잡고 망연히 오른쪽에 시선 둔 이들.

한편 처음 온 이들은 와아~감탄사 연발하며 외돌개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외돌개를 감싼 서녘 숲이 점차 기명색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좀 더 서쪽으로 나아가야 바다로 지는 해를 볼 수가 있겠다.

누가 선도라도 하는 듯 다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강정항이 보이는 포구, 발치는 벼랑이다.

제각기 전망 트인 자리를 잡고는 먼바다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구름층 거느린 하늘가에 스며드는 노을.
마악 장엄 낙조가 내리는 중이다.
태양의 다비식인가.
석양에 하늘이 불붙고 있다.
유전지대에 번지는 불길처럼 맹렬하다.

괄게 타오르는 장작불이다가, 마그마 폭포처럼 흘러내리다가, 거칠게 쏘아대는 화염방사기이다가, 한 깊은 여인이 울컥 토해내는 절규이다가. 마지막 몰아쉬는 숨처럼 처연스럽기 그지없는 낙조.

바다로 잠기려 서서히 가라앉는 태양.

사라져 가며 쇠잔해지는 빛의 자취,

곧이어 어둠의 베일이 그 모든 걸 부드러이 감싸 안으리라.

귀갓길 한라산은 반쯤 자색 구름에 가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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