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였다.
제주에 솟은 360여 개의 오름 중 용눈이오름 이름을 깊이 각인시킨 김영갑 갤러리였다.
부드러운 능선에 사로잡혔던 그 남자.
유려한 곡선에 매혹되어 이 오름 사진만도 천 여점을 찍었다고 했다.
급한 성미대로라면 당장 달려가보고 싶었지만 2년간 자연휴식년제에 묶여있던 당시였다.
그 후 탐방로와 편의시설 등 제반 정비를 마치고 2023년 재개장했으나 빵빵하던 기대감은 그새 바람 빠진 풍선꼴이 돼버렸다.
제주 동쪽 중산간지대를 가기에는 교통편도 녹록지 않았다.
구좌에 있는 비자림은 걸핏하면 다녀오건만 여긴 왠지 엄두가 안 났다.
그러다 오늘 치유의 숲에서 우연인 듯 필연으로 만난 젊은이와 즉석에서 의기투합, 용눈이오름에 가게 됐다.
그녀는 먼 거리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운전대를 잡고는 서슴없이 앞장을 섰다.
제주에 와서 맨 처음 오른 오름이 용눈이로, 첫눈에 반할 만큼 인상적이었다는 그녀.
비교적 완만한 산세라 산책하듯 걷다 보면 정상에 이르는데 높이에 비해 사방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라고.
설명만으로도 이미 격앙된 기분, 심장이 두근대다 못해 둥둥 북소리를 냈다.
달뜬 감정을 식혀주려는 듯 차창에 부딪는 눈보라
하도 소담스러워 크리스마스 시즌 같기도 했다.
한라산 윗세오름은 진작에 입산통제될 만큼 눈발 자욱해 인근은 부옇게 가려졌다.
그렇듯 한라산 자락 기상은 변덕이 수시로 팥죽 끓듯 해 감을 잡기 어렵다.
가시리 벚꽃길을 지나 비자림로 스치고도 한참을 더 달려 드디어 닿은 용눈이오름.
풍력단지 가깝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방에서 몰아치는 거친 바람에 몸 가누기조차 어려웠다.
기세등등한 바람이 장난 아니었다.
겨우겨우 중심 잡아가며 마른 억새 어지러이 뒤채는 언덕길을 올라갔다.
눈바람과는 결이 다른 억새바람은 무척 호쾌 호방했다.
비강 평수를 있는 대로 넓혀 스트레이트로 허파꽈리 낱낱을 소쇄시켜 주었다.
어깨 아래에서 크고 하얀 날개 돋아 우주 공간으로 날아오를 것 같은 이 기분이라니.
제주 오름들 중 유일하게 분화구가 셋이나 돼, 다양한 곡선을 보여줘서인지 단조롭지 않은 용눈이오름.
잠시 뒤돌아서면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이 나란히 서 있고 백약이오름도 저만치 드러났다.
불끈 솟구쳐 우람스런 다랑쉬오름에 비해 아끈다랑쉬는 시중드는 무수리처럼 유순했다.
그 앞 황량한 풍경은 언뜻 캘리 사막을 연상시켰다.
언제이고 살풍경한 그곳도 걷게 되겠지.
왼쪽으로는 성산일출봉이 갸웃 고개를 내밀었다.
능선 정상이라기 보다 끝 지점은 펀펀한 평지, 강풍 거칠 거 없이 몰아쳤다.
들었던 바대로 전망 장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동으로 지미봉과 두산봉 성산일출봉이 솟아오르고, 우도는 물에 떠 가물거린다.
여기서 굽어보니 지난번 올레 1코스 걸으며 겁나 식겁하게 했던 두산봉 길게 흘러내린 허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든다.
광치기 지나 섭지코지도 잡히고 풍력단지 바람개비는 바짝 눈앞이다.
사방 풍광에 취한 채 순간 공간이동을 한 나는 딴 세계에 편입돼 있다가 이윽고 현실로 돌아왔다.
내려오는 길은 금세 끝나 주차장.
오름의 초지 연둣빛 짙어질 때 다시금 와야겠다.
무작정 달려온 오늘은 변화무쌍한 날씨라 시야가 맑게 확보되지 않았던 터.
다음에 올 땐 하늘 청명한 날을 택하리라.
같은 풍광을 바라보고 이리도 풍요로운 언어로 어제의 감동을 풀어내시니
이 아침, 입가에 눈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한켠에 소소한 제 모습도 그려주셨네요:)
제주가 좋아 시작한 9년차 여행자의 반가운 만남,
감사한 하루의 선물^^
아이디와 프로필 사진 보고 아하~ 그랬어요.
뜻밖의 선물같은 만남, 고마웠구요.
바로 전날 윗세오름 그 한 장면만으로도 산행의 어려움 모두 상쇄될듯.
명품이 바로 이런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 간밤에 써제낀 포스팅 제목에서부터 내용도 첨삭 좀 했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