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봄비가 시나브로 산수유 꽃가지를 적시는 아침녘. 안개비 속에 산기슭은 그대로 은근한 동양화 한자락이다. 푸른 물감 푸는 대신 暗香 드리운 수묵빛 산수도. 오솔길 따르는 소나무 끝에도 생기롭게 오르는 물기. 겨우내 묵상에 잠겼던 오리나무숲 언저리에 스미는 봄의 입김이 자못 연연하다. 그리움이듯 어린 연둣빛이 어찌 보면 애잔하게 또는 어질게 느껴진다.
목소리조차 나직이 순하게 아주 순하게 내리는 봄비. 그 봄비에 깨어나는 삼라만상. 사각사각 키 돋우는 소리가 풀섶 어디쯤에선가 이는 속삭임으로 들린다. 새의 지저귐이 물오른 잔가지를 연신 기쁨에 떨게 한다. 하여 하나씩 움트는 새 잎들 새 순들. 겨우내 수척해진 청설모가 잽싸게 나무 사이로 건너뛴다. 약동을 준비하듯. 그 술렁임에 후드득 듣는 물방울. 본디 자리로 내려가 누운 낙엽들에 쉼 없이 적셔지는 봄비. 그 잎이 곱게 결삭아 다시 수액으로 오를 날도 멀지 않으리.
봄비는 어쩌면 창조의 샘물을 고이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주의 섭리 그 始原의 이야길 소곤대는 것일까. 바람마저 잠재우고 자애의 모습으로 대지를 다독이는 모성, 그 품 안에서 마음 고요히 가라앉힌다. 지순해지는, 그러나 새벽이 동터오듯 말갛게 깨어나는 의식의 눈. 그처럼 봄은 나에게 있어 참으로 소란스러운 계절이다. 침전된 의식 속에서 키워온 상념들이 하나씩 촉을 틔우며 밖으로만 향한다. 마치 발아기의 씨앗이듯.
그로 인해 켠켠이 다듬어온 나의 심저에서부터 균열이 오고 내 전신은 맥없이 무너져 내리며 주체 못 할 방황을 거듭하는 것이다. 이맘때면 늘 치르는 이름도 모를 이 열병. 혼자 들떠 신열 앓다가 제풀에 사그라들기까지 꽤 오래 제 자리 못 찾는 곤욕을 겪게 된다. 더구나 이렇게 봄비라도 내리는 날. 일상의 끝없는 번잡과 타성과 거미줄 쳐진 인연의 끈에서마저 나는 홀가분히 벗어나고 싶어진다. 진실로 나 자신과의 만남을 갖고 싶으며 나 자신이 主格이 되어 살고 싶다. 나를 얽어맨 모든 매듭을 풀고 아무것도 아닌 나, 그저 나 자신을 찾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갈구이며 엄청난 모반인가. 늘 자족하는 守分의 겸손과 편안을 받아 지니지 못하는 이 고질은 또 무엇인가. 피곤하다. 이 성정으로 인해 매사에 예각 도드라지게 날 세우는 자신 임도 안다. 그러나 질서와 도덕의 틀에 거슬리지 않음이 美이고 善이면 기꺼이 순응할 줄도 안다.
숲에 듣는 비는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젖어드는 것. 더구나 봄비는 지극히 유순하고 유정하게 적셔진다. 깊디깊은 곳에 숨겨진 絃 하나를 퉁기려 스며드는 봄비. 차라리 봄비가 광풍과 함께 온다면, 모진 소나기로 때린다면, 뇌성이라도 동반한다면 나 이리 최면에 걸리듯 사유의 숲을 서성이진 않으리.
프랑스의 화가 레제는 말했다. "나는 전선에서 참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예술이고 세기말이 어떻고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진실로 사람일 뿐인 사람들을." 그렇다. 부옇게 띄어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비 개일 오후를 생각해 낸다. 게서 내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본듯하다. 봄비 멎고 날이 들면 시장엘 가야지. 시장 중에서도 가장 생기와 활력이 넘쳐나는 자갈치 시장엘.
오가는 길거리에서, 붐비는 장터에서 레제의 이웃들을 스치며 삶의 참모습을 읽어야지. 생존의 기쁨을 나누어야지. 나도 그 대열에 동참한 행복을 확인해야지. 지척거림 없이 확실한 발길로 비에 젖은 숲을 내려온다. 시장 가는 길목. 어느 집 울안의 목련이 지고 있어도 나는 안타까워하진 않으리. 대신 찬란한 신록을 꿈꿔도 좋으리라. -8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