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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회수를 건너면

by 무량화 Mar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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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 우중충하던 날씨가 맑게 갠 아침.

푸른 하늘과 햇살이 반가워 바닷가 쪽을 걷기로 했다.

내면에 자기 세계를 구축한 사람, 몰두할 자기 일이 있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혼자서도 충만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법.

휘적휘적 무심히 걷는 산책도 그러하지만 무언가 골똘히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사유만이 아니라 얻게 되수확물도 분명 있더라는.

오늘은 사색을 동반한 유의미한 산책이 아니고 실속 있게 봄맞이 햇쑥을 뜯어올 예정이다.

진작에 보아둔 쑥을 뜯으려고 작은 봉다리를 주머니에 넣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봄이 되자 여기저기서 보얗게 올라오는 쑥이 눈에 띄었으나 너무 어려 때를 기다렸다.  

도로변 쑥은 먼지가 많겠고 밭두렁은 제초제 뿌리는 걸 봤기에 먹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소나무가 선 바닷가 언덕은 깨끗하기도 하거니와 해풍 맞고 자란 쑥은 풍미가 더 진하다고 들었던 터.

도다리 쑥국이 아니어도 제철 음식은 뭐든 보양식, 특히 쑥은 비타민 C가 풍부해 감기 예방에도 좋은 건강식품이란다.

햇빛 담뿍 쬐며 쑥 뜯노라면 비타민 D도 얻을 테니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자 자연 비타민 무료 보충도 되므로 일석이조.

자급자족까지는 아니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재료를 준비해 흐뭇한 식탁을 만들 수 있다는 자체가 나름 재미지고 신났다.  

삶을 스스로 운전한다는 느낌이 나서 행복하고, 매 순간 건강히 살아 숨 쉬는 기분이 들어 즐겁고, 생을 쫀득하게 채워가는 것 같아 만족스러우니까.

 

이유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늘에 감사한 건, 쌓은 덕 미미하건만 이리도 안성맞춤인 자리로 데려다 안착시켜 놓으셨음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시골 태생이라 그런지 원래 달래, 냉이 캐고 미역, 굴 따는 일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취미와 적성에도 딱 맞았다.

하여 미국살이 바쁜 틈새에도 화단 만들듯 채전 싱그러이 꾸몄으리라.

그러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뉴저지 살 때 텃밭 잘 가꾸는 교우가 한국 다녀오며 가져온 쑥 뿌리와 머위를 나눠 줘 심은 적이 있었다,

쑥은 이태 만에 방석 자리만큼 무성히 번지긴 했으나 겉모양만 쑥일 뿐 쑥 향기가 전혀 나질 않았다.

같은 종류의 쑥이라도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그 성질이 달라진다는 걸 그때 절감했다.

환경이 변함에 따라 본래의 특성이 바뀌어 고유의 향을 잃어버린 쑥은 무정란 같았다.

저 아래 파도 소리와 해풍 배경음악으로 깔아 두고 쑥을 뜯기 시작했다.

금세 손끝에서 퍼지는 쑥 내음은 더할 나위 없이 향그러웠다.

그래, 바로 이 향이야! 후각이 기억하는 오래전 그 향이 울컥하게 만들었다.

길냥이 한 마리 언덕배기에 오도카니 앉아서 말끄러미 그러는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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