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토마호크 미사일. 미국이 보유한 최강 미사일인 토마호크는 현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기로 알려졌다. 갑자기 토마호크란 명칭의 유래가 궁금했다. 그로부터 사우스 다코다주의 러시모어산이 소환됐다. 큰 바위 얼굴로 알려진 그곳에는 미국 대통령 네 명의 얼굴이 조각돼 있다. 미국 역사상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 워싱턴, 민주주의 국가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이다.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제퍼슨, 20세기 미국 경제를 부흥시킨 테오도오 루스벨트, 노예해방을 시킨 링컨대통령의 조각이다. 바위 높이만 18미터, 코 길이만도 6미터라니 그 크기가 대강 짐작된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보스턴 태생의 조각가 코자크는 훗날 인디언의 영웅인 성난 말(Crazy Horse) 조각을 1948년부터 시작한다. 러시모어와 불과 27킬로미터 떨어진 블랙힐. 인디언 땅으로 조약이 체결된 블랙힐은 인디언들이 성지처럼 신성시하던 땅이다. 그러나 검은 언덕에서 금이 발견되자 약속은 휴지조각이 되고 백인들이 마구 몰려든다. 그들을 보호하고자 기병대가 투입되자 분노한 인디언들은 격렬하게 저항한다. 하지만 역부족, 인디언을 이끌던 용감한 전사 성난 말은 서른 다섯 나이에 백인병사가 찌른 칼에 숨지고 만다. 장거리 미사일 이름인 토마호크는 성난 말이 죽는 날까지 놓지 않았던 손도끼 이름이라고 한다.
1939년 인디언 수우(Sioux)족의 추장 헨리 스탠딩 베어(standing bear, 서있는 곰)의 편지를 받은 후 이 같은 결심을 하게 된 코자크. '서있는 곰'이 보낸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우리 추장들은 백인에 대한 소망이 있다. 우리 홍인(紅人, red man)도 백인처럼 위대한 영웅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백인들이 알았으면 한다." 그가 말하는 위대한 영웅은 'Crazy Horse (성난 말)'이었다. 추장은 코자크의 경력을 잘 알고 있었다. '성난 말'이 죽은 날짜와 코자크가 태어난 날짜가 같다는 것을 안 추장은 이를 계시와 같은 인연으로 여기고 편지를 썼다. 코자크는 그 후 '성난 말'의 삶을 연구했다. 그리고 '성난 말'의 서사시 같은 삶을 재현하는데 남은 인생을 걸겠다고 작정한다. 편지를 받은 지 8년 후였다. 1948년, 그의 첫 망치질이 시작됐다.
코자크는 원주민을 도륙하고 학살한 침략의 백인역사를 보속 하듯 암벽에 매달려 성난 말을 새겼다. 연방정부의 지원을 거부하고 단지 후원금과 관광수입으로 버티며 35년 동안 오로지 성난 말을 바위에 새기던 코자크 지올코브스키(Korczak Ziokowski)는 1982년 숨을 거둔다. 이름으로 봐서 유대계 같은데 위엄 어린 성난 말의 조각을 통해 인디언 후예들이 많은 위로를 얻을 것이고 자부심도 느낄 것이니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해낸 그다. 그의 뒤를 이어 아내와 자녀들이 손가락 하나가 버스만 하다는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는데 98년에 얼굴이 완성되어 제막되었다. 하지만 자유의 여신상 두 배 높이의 조각상이 완성되려면 백 년도 더 걸린다는 대역사로 크레이지 호스 기념재단과 함께 그의 손자 증손자가 대대로 이끌어갈 것이라고.
조지프 커리가 "인디언의 비참한 역사는 미국의 영광 속에 숨겨져 있었다. 코자크는 뒤틀린 그 이면사를 성난 말 조각을 통해 미국인 전체에게 고발한 것이다. 그리고 왜곡된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숙제를 던졌다."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인디언 후원자가 아니다. 단지 진실을 전하는 돌 속의 이야기꾼일 뿐이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려면 과거에 대한 바른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긴 코자크. 변죽만 울리는 일본 정부가 뼛속 깊이 새겨들을 말이자 분별력 없이 설치는 일부 한국인들이 곰곰 되씹어봐야 할 말이다. 큰 바위 얼굴보다 그의 성난 말을 보러 언젠가 꼭 북서쪽으로 길을 떠날 것이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