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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파수꾼 멍이
by
무량화
Aug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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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면 날마다 뒤란 텃밭에 온 동네 새떼가 모여 진을 치다시피 했다.
그냥 놀다 간다면 누가 말리랴만 허구한 날 거기서 먹자판을 벌렸다.
유채꽃 장다리꽃 시금치꽃, 꽃지고 씨 맺히자 새들이 연한 꼬투리를 쪼아 알맹이를 빼먹었다.
처음엔 밭두렁 뒤편에서만 거덜을 내더니 점점 앞쪽으로 옮겨오고 있다,
그래도 종자는 좀 남기겠지 싶었는데 날이 갈수록 새들이 늘어나며 밭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할 수 없이 헌 옷가지로 허수아비 흉내도 내보고 풍선을 사다 매달아도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떼거리로 모여든 새들은 씨앗 대궁에 앉아 맛나다고 재잘거리며 신나게 씨앗을 쪼아댔다.
비교적 자잘한 갓씨는 꼬투리 채로 뜯어 먹혔고 배추씨 알갱이도 살뜰히 발라먹었다.
삼각형으로 각진 데다 가시까지 돋은 시금치씨도 새들의 공격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씨앗 여물지 않아 새들의 공격 피한 채 아직도 이파리 싱싱한 아욱만 독야청청.
쭉쭉 뻗은 아욱대 아래 기를 못 펴온 자주 상추는 이때껏 꽃대도 못 올렸기에 괜찮았다.
덩달아 키를 세운 실란트로도 하얀 꽃을 잔뜩 피어 올려 볼만하다.
이곳 기후대가 원산지와 엇비슷하기에 혹시나 하고 치아씨를 뿌렸는데 새싹이 귀엽게 돋아났다.
샐비어 닮은 꽃이 피고 씨앗 여물어 치아씨를 안겨줄지 어떨지 앞으로 계속 지켜볼 일이다.
올 채소 농사는 유독 풍작을 보여 씨앗 대궁도 내 키를 훨씬 웃돌게 자랐으며 씨주머니도 아주 실했다.
시효 지난 종합 비타민, 홍삼, 로열젤리와 오메가
3를 세숫대야에 몽땅 털어놓고 밤새 녹여 밭에다 뿌려준 덕인지?
암튼 올 채소 농사는 특별한 성과를 이뤘고 따라서 씨앗도 예년에 비해 풍성하게 맺혔다.
이번엔 종자를 알뜰히 채취해 채소씨 원하는 이웃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게 되었다 싶었는데 이대로 두었다가는 새들이 씨를 다 먹어치워 채소씨를 건지기는 애진작에 글러버릴 판이다.
생각 끝에 멍이를 뒤란 텃밭 앞에다 보초를 세우기로 했다.
낮 동안만 새들 파수꾼 노릇을 하겠지만 햇볕을 피하게 집까지 바깥으로 옮겨다 놓았다.
새들이 근처에 얼씬거리기만 하면 멍이는 제 영역을 침범했다고 길길이 날뛰며 왕왕 짖어댔다.
효과는 제대로 나타났다.
가까스로 약간의 씨앗은 챙기게 됐다.
며칠 후 주말, 딸내미가 왔길래 자랑삼아 씨앗 건진 얘길 늘어놨다.
딸이 화들짝 놀라며 눈 똥그랗게 뜨더니 속사포를 쏘아댔다.
엄마, 목사리 채워 멍이 묶어놓은 거 동물학대한다고
신고 들어가면 어쩌려고!
순간 멍
~
#&%
~
띵해진다.
별꼴이야, 미국법은 참 요상스럽기도
하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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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파수꾼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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