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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은갈치국 시원한 포구 식당

by 무량화

효돈천변 따라 새로 난 트멍길 두 시간여 걸었다네.

슬슬 허기감이 들던 차라 은갈칫국이 그리 땡겼던가.

한 뚝배기 깔끔스레 비워냈다네.

갈칫국은 풋배추와 늙은 호박만 숭덩숭덩 썰어 넣고 고춧가루 등 별도 양념을 하지 않은 매우 소탈한 토속음식이랄까.

외견상 맨숭하니 맑은 갈칫국은 어쩐지 비릿하지 싶어 아예 사 먹지 않았는데 초대받은 아래층 쥔장 댁에서 그 국과 맞닥뜨렸지 뭔가.

도리 없이 먹어 봐야 할 판, 수저 끝으로 국물 맛을 살짝 보았지.

어라? 갈치 비린내는커녕 감칠맛에 더해 시원한 맛에 반해 이젠 일부러 찾아먹는 음식이 됐다네.

복지리나 대구지리탕을 보나 따나 당연히 무가 특유의 시원한 맛을 내주는 줄 알았다네.

그런데 무를 넣지 않아도 이 시원하고 담백한 맛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옆집 황선생도 섬 토박이인 쥔장네서 배운 레시피로 이젠 즐겨 이 국을 끓이는데 어쩌면 천일염만으로 간을 하는 게 비결이 아닐까도 싶고.

아무튼 제철 갈칫국은 무지 시원하면서 깊을 바닷속처럼 묘하게 비밀스런 맛이더라네.

니맛도 내맛도 아닐 거 같이 허여멀건 저 국이 대체 무슨 맛이 있겠나? 나 역시 첨엔 멀거니 건너다만 보았더라네.

아무 양념도 들어있지 않다고 갈칫국을 뜨악하게 쳐다만 볼 일이 전혀 아니더군.

일단 한번 드셔보게나, 까탈스러운 입맛일지라도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 걸세.

이 식당은 이른바 맛집으로 뜨는 곳.

안 그래도 잘 나가는 식당인데 굳이 나까지 맨입에 광고질 할 일이야 뭐 있겠나.

이 보게나, 난 어디까지나 자청한 은갈치국 홍보꾼일 따름임을 잊지 말게나.

평소 그냥 일상다반사로 해대는 그날 하루치 일기 정도랄까.

갓 잡아 상에 올라온 횟감 쫄깃했고 물 좋은 멸치라서 인지 멜튀김도 유난히 고소했으며 고등어구이도 비린내 없이 맛깔스러웠네.

구이 외에는 아직껏 그 유명한 자리돔 물회나 자리돔 젓갈 도전에 실패했기에 첨으로 용기를 내 젓갈 콩만큼 집어서 꿀꺽.

원래 젓갈은 명란젓조차 물컹한 느낌이 싫어 못 먹는데 이 젓갈 또한 그저 짭짤하단 거 외엔 도전 실패.

어부 아방이 밤새 바다에 나가 그물질해 조달한 재료라더니 그래선지 생선 선도 유독 신선 하드만.

역시 싱싱한 횟감은 포구 가까운 데가 제격일세.

김에 싸서 맛본 회, 선도 좋을수록 탱글 해서 씹히는 맛 최고였네.

생선회, 맛나게는 먹었는데 맛에 빠져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먹질 않았겠나. ㅎ

어쩌면 들었을 텐데 먹기 바빠 이름 따위 챙기지 않았을지도.

식사 후 입가심 후식으로는 쇠소깍에서 테우 타고 투명히 푸른 물결에 취해보았다네.

"바위 끝 물가에 실컷 노니노라

그 나믄 여나믄 일이야 부러울 줄 있으랴"

'만흥'을 써내리신 고산 선생 흥취 이해가 되더라네.

이에 더 이상 무에 기리우랴.

유유자적 신선놀음으로 그 하루도 저물어 어언 지는 해가 포구에 뿌려댄 윤슬 눈부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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