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살다 보면 일본이 한국에 비해 2030 남성이 살기 수월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일본 남성분들도 저마다의 고충을 겪으며 살고 계시겠지만, 적어도 '생활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일본은 확실히 살기 편한 나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
우선 첫 번째로 한국 남성과 달리 일본 남성은 군대에 갈 필요가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남자가 군대에 가는 걸 당연시 여기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군대에 가는 것이 의무가 아닌 나라가 훨씬 많다. 일본에서는 남자가 군대에 갈 의무가 없기 때문에 남자도 여자와 같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여자와 같은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휴학 없이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남자들도 한국 나이로 스물세네 살이면 대부분 회사에 취직한다. 일본 남성은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는 만큼 경제적으로 자리 잡는 시기도 빠른 편이라 그런지, 주변을 보면 한국에 비해 결혼을 일찍 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92년생 대학 남자 동기들과 전 직장 남자 동기들 몇십 명 중에 아직까지 결혼 안 한 친구는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2. 취업과 내 집 마련이 수월하다
두 번째는 일본이 한국에 비해 2030 세대 청년들이 취업과 내 집 마련을 하기 수월하다는 점이다. 2022년 1월 기준 일본의 완전 실업률은 2.8%로 사실상 완전고용상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1인당 실제 일자리 수를 나타내는 유효 구인배율은 2022년 1월 기준1.20배였다. 즉, 구직자 1명당 1.2개의 일자리를 갖고 있는 셈이다. 물론 취업 후에 인생이 더 고달파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일자리를 못 구해서 먹고살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일본 청년들은 내 집 마련하기도 수월하다. 왜냐면 일본에서는 월급이 밀리지 않는 멀쩡한 직장에 다닌다는 전제 하에 주택 대출이 100% 가까이 나오고(LTV 100%), 금리도 변동금리 기준 0%대로 굉장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자기 돈 하나 들이지 않고 집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일본은 2030 남성이 말 그대로 '먹고'살기 편한 나라이기 때문이다.일본에는 2030 남성 고객을 위한 음식과 서비스가 굉장히 잘 발달되어 있다.
한국에 사는 가족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밥을 챙겨 먹기 귀찮다는 이유로 영양 밸런스가 폭망인 식생활을 영위하는 젊은 남성이 의외로 많다. 물론 젊은 여성분들 중에도 대충 끼니를 때우는 분들이 있겠지만, 여성들이 말하는 '대충'과 남성들이 말하는 '대충'은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여자들이 말하는 '대충'이 그냥 커피라면, 남자들이 말하는 '대충'은 T.O.P 랄까?)
일례로 내 남동생과 동생 친구들한테 평소에 끼니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물어봤더니 보통 편의점 도시락이나 라면, 치킨 같은 걸로 삼시 세끼 돌려막기를 한다고 답했다. 심지어 치킨을 이틀 걸러 하루 꼴로 시켜 먹는다는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실 나도 내 몸의 절반 이상이 편의점 음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편의점 헤비 유저지만, 일본에서는 편의점 음식으로도 충분히 균형 잡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일본에는 혼자 사는 2030 남성들을 위한 저렴하고 푸짐한 밥집이 많고, 편의점 간편식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귀차니즘이 심한 사람이라도 쉽고 편하게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있다.
#2. 혼자 사는 2030 남성도 밥 챙겨 먹기 쉬운 나라
1. 저렴한 가격에 든든한 한 끼를 제공하는 밥집
일본에는 돈가스집, 덮밥(규동) 집, 라멘집 등 주로 남성 고객이 선호하는 '양 많고 푸짐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밥집이 굉장히 많다. 도쿄 시내 대부분의 역 앞에는 기본적으로 덮밥집, 라멘집 같은 남성 고객이 자주 가는 밥집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가격대는 소고기 덮밥(규동) 단품의 경우 380엔~500엔대로, 한국 돈으로 4~6천 원 정도만 있으면 먹을 수 있다. 여러 가지 반찬이 같이 나오는 정식 세트도 7~8천 원 정도면 먹을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덮밥 체인점 '마츠야(松屋)' (출처: 트립어드바이저)
마츠야 메뉴판 (단품 380엔부터 정식도 700엔대 내외로 사먹을 수 있다.)
마츠야 내부 전경 (출처: JAPAN TODAY)
이런 밥집들이 꼭 남성 고객만을 타깃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남성 고객(주로 샐러리맨)이 압도적으로 많다. (마치 예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는 남성 고객보다 여성 고객이 더 많은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여담이지만 일본 유학 시절, 마츠야를 좋아해서 자주 방문했었는데 갈 때마다 나 빼고 대부분 남자 고객밖에 없어서 살짝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당시 일본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마츠야에 가는 여자는 좀 깬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순간의 민망함과 주변의 시선 때문에 저렴하고 맛있는 덮밥을 포기할 순 없었기에 아저씨들 사이에서도 꿋꿋이 덮밥을 야무지게 잘 먹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덮밥 체인점 '스키야(すき屋)'
스키야 메뉴판 일부 (출처: 스키야 공식 홈페이지)
일본은 덮밥집이라 해도 규동만 파는 게 아니라가정식, 해산물 덮밥(사케동, 마구로동 등), 카레 등 메뉴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서 나름 건강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가격대도 정식 세트 기준으로 1000엔 미만의 부담 없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돈가스 전문 체인점 '카츠야(かつや)'
카츠야 메뉴판 (가격대도 매우 합리적이다.)
'엄마랑 돈가스 먹으러 갈까?'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이 한마디를 기억하시는지.
한국 남성의 소울푸드 '돈가스'를 파는 음식점도 일본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는 돈가스 맛집이랄 것이 따로 없을 정도로 웬만한 곳은 다 맛있다.
튀김을 어쩜 그렇게 바삭바삭하게 잘 튀기는지 비법을 전수받고 싶을 정도다.
다음으로 드디어 기다리던 일본 편의점에 대해 소개할 차례다. 정말로 일본에서는 편의점 음식만으로 균형 잡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지 여러분들이 보시고 판단해주시기 바란다.
2. 먹거리 천국 일본 편의점
일본은 건장한 젊은 남성도 편의점에서 한 끼를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을 정도로 편의점 식사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 특히 1~2인가구를 위한 도시락과 반찬 종류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다채롭다. 홈술족을 위한 안주 종류도 굉장히 많다. 굳이 외식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아래 사진은 우리 동네 '행복 충전소' 세븐일레븐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이다.
술안주 종류가 ㅎㄷㄷ... 이것도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
파스타·피자부터 치킨 가라아게, 닭꼬치, 만두, 오코노미야끼, 칠리새우, 마파 가지, 치즈 닭갈비까지... 국적을 넘나드는 다양한 안주와 식사류가 구비되어 있다.
식사 코너
각종 편의점 도시락부터 생선 구이, 함박 스테이크, 낫토 등 밥반찬까지.. 어후.. 종류가 너무 많아서 뭐 먹을지 고르는 게 매번 고역이다.
면 덕후를 위한 샐러드 파스타 종류도 다양하다. 잘 보면 한국 배추김치와 깍두기, 오이소박이에 나물류까지 있다. 매일매일 그날 기분에 따라 색다른 샐러드를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채소 과일 코너
채소/과일/주스 코너도 충실하다. (살짝 지치네^^;;)
참고로 위의 사진은 편의점에 있는 식사류 코너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일본 편의점 음식은 종류가 다양한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건 바로 '맛'이다. 일본 편의점 간편식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웬만한 가게에서 사 먹는 것 못지않게 맛있다. (진짜로요..) 특히 세븐일레븐의 간편식은 일본 내에서도 퀄리티가 높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사실 처음엔 편의점 간편식이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냐고 생각했지만, 친구의 권유로 시험 삼아 세븐일레븐표 간편식을 몇 개 사 먹어 보고 그 길로 세븐일레븐 덕후가 되어 버렸다.
지금부터 시식 후기 들어갑니다. (갑자기?)
#3. 일본 세븐일레븐 간편식 시식 후기 ★
1. 해산물 오코노미야끼 (257엔)
출처: 일본 세븐일레븐 홈페이지
처음에 꽁꽁 얼어있는 냉동 오코노미야끼를 포장지에서 꺼냈을 때는 너무 맛없어 보여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에휴 그럼 그렇지.. 별 기대 없이 포장지에 적힌 대로 전자레인지에 7분 10초를 돌린 후 꺼내보니..
해산물 오꼬노미야끼 (가격: 약 3천 원 상당)
오호 이거 보소? 일단 비주얼은 합격이다.
기대 반 의심 반으로 한입 입에 넣는 순간..
출처: 요리왕 비룡
여기가 말로만 듣던 오코노미야끼 맛집인가요?
웬만한 오코노미야끼 전문점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어서 너무 놀랐다. 심지어 가격도 한국 돈으로 3천 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어떻게 감히 냉동식품 따위가 가게에서 파는 오코노미야끼 맛을 능가할 수 있는지 너무 황당해서 말문이 막힌다.
2. 마르게리따 피자 (537엔)
출처: 세븐일레븐
사실 나는 피자에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다.
2014년 유럽 여행에 갔을 때 나폴리에서 마르게리따를 맛본 이후로는 피자 '강경 보수파'로 돌아선 지 오래다. 그런데 친구가 세븐일레븐표 마르게리따가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친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지만, 일단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한 번 사봤다.
빨간 티셔츠에 비장한 표정으로 눈길을 끄시는 일본의 피자 명장이 감수했다는 냉동 마르게리따..
흠.. 냉동 피자라.. 별 기대 없이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화덕 마르게리따 (가격: 약 5500원 상당)
Mamma Mia! (엄마야!)
출처: 영화 <맘마미아!>
엄마야 깜짝이야
순간 나폴리로 순간이동한 줄 알았다.^^
이게 냉동 피자로 구현이 가능한 맛인가??
입 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화덕의 불맛에 너무 놀라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2만 원 넘게 주고 먹었던 마르게리따 피자보다 세븐일레븐에서 537엔(약 5500원) 주고 사 먹은 냉동 마르게리따 피자가 더 맛있다면 아무도 안 믿겠지..?
근데 진짜다.
심지어 나폴리에서 먹었던마르게리따에도 크게 꿀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3. 고등어구이 (290엔)
환상의 맛을 자랑하는 세븐일레븐의 고등어 소금구이 (가격: 약 3500원 상당)
세븐일레븐표 간편식의 하이라이트는 다름 아닌 고등어 구이다.
겉보기에 굉장히 비려 보여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너무 맛있게 먹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나도 한 입 먹어봤다가...
(출처: 요리왕 비룡)
어머니...ㅠㅠ
내 나이 서른 하나(만 29세^^)에
인생 고등어구이를 여기서 맛보게 될 줄이야..
전자레인지에 50초 돌렸을 뿐인데
어떻게 갓 구운 고등어구이 맛을 그대로 재현해낼 수가 있지..?
편의점에서 산 고등어 이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일본 편의점 음식 클라쓰에는 정말이지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일본 세븐일레븐은 미친 게 분명하다.
괜히 사람들이 세븐일레븐을 '우리 동네행복 충전소'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고 하나 보다.
(이상 아무말 대잔치 시식 후기였습니다.)
#4. 마무리
지금까지 일본의 밥집과 편의점 문화에 대해 대략적으로 살펴본 결과,
비단 2030 남성뿐만 아니라나 같은 귀차니스트 요알못('요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여자 사람에게도 일본은 참 '먹고'살기는 좋은 나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