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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Apr 24. 2024

24일차. 그러려니

40살 인생에 나의 인간관계가 어떤지 돌아보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어제밤 꿈 때문이다. 꿈에 20년 전에 만났던 옛 애인이 나왔다. 21살, 대학교 2학년 때 사귀었던 선배다. 1년 정도 사귀다 군대를 간 일병도 달지 못 애인을 먼저 찬 건 나였다.

내가 그 사람의 꿈을 꾸는 이유는 사실 알 것 같다. 그 남자는 M으로 부르겠다.

M은 내가 신입생으로 입사했을 때 나에게 가장 호감을 보였던 선배였다. 그의 호감은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챙겨준 걸 수도 있다. 그런데 난 그의 호감을 이성적인 호감으로 받아들였다. 어쨌든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와 나는 사귀게 되었고 300일쯤 뒤 그가 군대를 가면서 멀어졌다.


"그런 사람은 사귈 게 아니라, 친한 오빠로 지내면 평생 갈 수 있잖아. 멍청하네."


M을 잘 아는 내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M은 괜찮은 사람이었다. 내가 그때 그와 사귀지 않았다면, 선배로 그리고 인생 친구로 지금까지 잘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을 꼽으라면 손가락 3개 안에 들어갈 일이다. 그와 사귄 게.

그는 20대 초반인 내가 볼 때도 자기 사람을 잘 챙겼고, 의리가 중요했으며, 성격이 좋았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꿈에 나오는 이유다. 나는 M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는 내가 놓치기 싫은 인간관계 중에 하나였다.

솔직히 말하면 M같은 사람이 내 옆에 있으면 든든할 그런 사람이었다. 그걸 다시 느꼈던 건 대학교 동기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오래 연락을 하지 않았던 후배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M이 동기들과 후배들을 모두 데리고 장례식장으로 왔다. 난 그런 그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M은 그런 사람이었지.'


그를 사귐으로써 내 인생에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인연을 놓쳐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후회한다. 그와 헤아진 게 아니라 그와 사귄 걸 후회한다.


회사에 출근했다가 외근을 가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내 인간관계는 결혼을 하면서 다 멀어졌다. 그 이유는 대부분 술친구가 다 남자였기에. 서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이성 친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노래를 들으며 예전 일을 떠올렸다.

내가 M에 대해서 딱 한마디로 정리한 적이 있었다.


"M은 내가 어디에 납치돼서 갇혀있어도 어떻게든 나를 찾을 것 같아."


M은 나에게 그 정도로 신뢰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애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

가끔 그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사과하고 싶다. 나의 철없음을, 상처주었던 나의 말들을.


다 그러려고 그런 거다. 내가 상처를 준만큼 그는 행복하게 살고 있길,


[그러려니-선우정아]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잘 지내니
문득 떠오른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겠지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쓸쓸히
그러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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