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같이 계시기는 하지만, 평일에도 퇴근 전까지 오후 내내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는 나는 주말까지 엄마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하기가 죄송스럽다. 그래서 주말에는 남편과 내가 아이와 놀고 엄마는 쉬실 수 있게 해드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가끔 보고 싶은 영화가 있거나 어딘가를 가야할 때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아이를 맡긴다.
엄마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난 엄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엄마의 체력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떨어지고 아이는 체력이 점점 좋아지니 버거울 만도 하다. 나 또한 버거울 때가 있으니 오죽 하실까.
어쨌든 남편과 오랜만에 팝콘을 사들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나는 액션이나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어릴 때는 멜로도 좋아했던 것 같은데 뭔가 심각한 영화를 안 좋아하게 되었다. 현실도 힘든데 영화를 보면서도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달까. 그래서 그냥 웃고 즐기고 때려 부수는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범죄도시는 1편부터 4편까지 영화관에서 보았다. 그냥 내가 기대한만큼의 영화였다. 제법 웃었고 제법 통쾌했다. 무엇보다 남편과 둘이 왔다갔다 하며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남편과 연애를 포함해서 11년째다. 이제는 정말 남매 같기도, 전우 같기도 하지만,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늘 말한다.
"네가 제일 잘한 일은 OO(남편)이랑 결혼한 일이야."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물론 가끔 열받을 때도 있지만, 남편 역시 열받을 때도 있을 테니 그저 그러려니 하려고 한다. 남편과는 첫 회사에서 만났다. IT회사의 특성상 야근도 많고 주말 근무도 많고 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다. 그 당시 나도, 남편도 전 애인과 헤어진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내가 먼저 술을 먹자고 했다. 그렇게 몰래 사내 연애를 시작했지만, 사내 연애는 당사자만 비밀이라고 생각하고 복사기도 안다고 했던가. 눈빛만 보고도 눈치 챈 사람이 제법 있었다.
내가 첫 회사에 입사했던 건 이력서 70개 중에 합격한 2군데 중 한 군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 그러려고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남편을 만나고 결혼하고, 지금 아이를 만난 게 모두 운명 같기도 하다.
정말 오랜만에 아이 손이 아닌 남편과 둘이 손을 잡고 걸으며 어색하기도 했지만, 연애할 때의 기분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역시 제법 괜찮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