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이중생활을 하던 어느날, 엄마에게 가방에 있는 담배를 걸렸다. 엄마는 책장에 있던 책을 던지며 나가라고 소리쳤다. 기억나는 건 두꺼운 정석 책이 날라왔던 것이다. 난 그대로 집에서 나와서 독서실로 갔다. 그 당시 독서실은 새벽 2시까지 했었기에 합법적으로 늦게까지 집에 안 갈 수 있었다. 담배를 처음 걸렸던 그날도 집에 늦게 들어갔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엄마는 나에게 담배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셨다. 여러번 걸렸지만, 엄마는 그저 한숨만 쉬실 뿐 아무말하지 않으셨다.
아주 나중에 들었지만, 엄마는 나에게 화를 내거나 혼내고 싶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게 아빠 없이 나를 키운 엄마의 미안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나는 엄마가 나를 포기했다고 생각했고 스무살 이후에는 술을 먹고 아침에 첫차로 집에 들어가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나에게 한번도 화를 내지 않으셨다.
이십대의 난 엄마가 아픈 걸 몰랐다. 엄마의 갱년기도 몰랐고, 생리전 증후군으로 고생하신 것도 몰랐다. 나 연애하느라, 나 노느라 엄마를 방치했었다. 엄마는 혼자 외롭게 버티셨다.
그렇게 철없이 살던 어느날, 남자친구와의 여행을 갔다가 거짓말한 게 걸린 날이었다. 엄마는 화를 내는 대신 나에게 한마디 하셨다.
그날 엄마의 한마디가 내 인생에 제법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부터 내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한테 말해도 당당한 일인지.
서른이 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고 있지만, 이십대의 난 정말 철이 없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생활비를 보탰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는데.
부족한 가정환경을 탓하며 '난 아빠가 없으니까, 난 힘드니까, 난 불행하니까'를 나의 일탈에 정당성으로 부여했다.
엄마는 나를 포기한 게 아니라, 나를 믿으셨던 것 같다. 과정은 조금 돌아왔지만, 난 제법 잘 자랐고 지금은 누굴 만나도 엄마는 딸 잘 키웠다는 말을 들으시니. 엄마의 육아(?)법이 돌고 돌아 성공한 것일 지도.
내 아이를 봐주시면서도 4년 동안 아이에게는 짜증도 화도 한번도 내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 아이를 보는 눈빛을 보며 난 생각한다. 어린 나를 바라봤을 엄마의 눈빛을.
오늘 역시 다행인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