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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Apr 11. 2024

11일차. 남편과의 관계

아이를 낳고 4년만에 남편과 둘 다 휴가를 내고 회사에 가지 않았다. 남편은 나와 같은 IT 회사지만, 휴가를 내기 쉽지 않은 업무를 하고 있어서 둘이 같이 쉬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겸사겸사 볼일이 있어 둘 다 휴가를 내고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카페에 가서 마주앉아서 오랜만에 연애할 때처럼 시간을 보냈다.


결혼한지 10년, 이제 11년차. 연애까지 하면 이 사람과 11년 넘게 함께 한 셈이다. 실 결혼하고 5년 동안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5년 동안 둘이 정말 신나게 신혼 생활을 즐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른 살, 뭣도 모르고 돈도 없는 상황에서 정말 사랑만으로 결혼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연애부터 결혼 5년까지 한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둘의 사이는 라졌다. 나는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앓았고, 남편은 변해버린 나로 인해 힘들어했다. 그때의 내 느낌은 이랬다.


"아이를 낳느라 몸도 다 망가지고, 살도 찌고, 회사도 못 다니는데 저 남자는 포기한 게 없어."


난 일에 욕심이 많았기에 육아휴직도 오래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쉬는 동안 경력을 쌓고 있는 남직원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남편은 너무도 예민해진 나의 눈치를 보느라 힘들어했다.

1년이 지나고, 회사에 복직하고서도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아이가 아프면 휴가를 쓰는 건 나였고, 회사 눈치를 보는 것도 나였다. 왜 부모인데 나만 희생해야 하는지 화가 났었다.

2년이 지나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며 조금 편해졌지만, 여전히 육아가 힘들고 서툰 나는 늘 힘들어했다.

우울증을 치료하며 다행히 난 웃음을 되찾았지만, 완전히 남편에게 예전처럼 웃지는 못했었다.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남편과 다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리고 이제야 남편의 노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야근을 하고 와서도 아이와 쉼없이 놀아주고 내가 쉴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내가 아무리 짜증을 부려도 웃으며 토닥거려주었다. 4년 동안 큰 소리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빠 정말 힘들었겠다."


나의 말에 남편은 그저 웃었다.


"그래서 둘째는 절대 안 낳으려고."


그의 대답에서 힘들었던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고마움에 울컥했다. 아이에게 나의 관심과 사랑이 집중되는 동안 남편은 그저 묵묵히 나를 기다려준 것 같았다.


오랜만에 손을 잡고 걸으며 남편을 보았다. 10년 전과는 나도, 그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는 내 편이었다.

아이는 자립하고 독립할 수 있게 우리가 도와주는 것 뿐,  결국 내 옆에 남는 건 남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소중하지만,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늙어가는 건 그다.


여유로운 오늘 하루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남편은 대답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여전히 무뚝뚝하긴.


매일 글을 쓰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있다. 고마운 일이 많은 삶이다.


내 편, 소홀해서 미안해.

내 진심은 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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