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친구분들과 여행을 가셨다. 1년에 2~3번씩 휴가를 드린다.
엄마와 집이 분리되어 있으면 엄마도 육퇴를 하고 본인의 집에서 쉬실 수 있겠지만, 같이 살다 보니 경계가 없이 온종일 육아와 집안일이다. 특히 부지런하고 깔끔한 엄마는 쉬지 않고 청소, 빨래, 집정리 등등을 계속해서 하신다. 그래서 여행이라도 보내드려야 쉬실 수 있다.
맞벌이 하는 딸과 사위 때문에 모든 집안일은 엄마 차지다. 거기다 손녀 육아까지.
엄마가 여행을 가시면 나의 할 일이 늘어난다. 평소에는 퇴근 후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아이와 놀다가 자면 된다. 엄마가 안 계시면 모든 집안일이 내 차지이기 때문에 나는 바빠진다.
오늘 아침, 곤히 잠든 아이를 깨워 양치를 시키고 옷을 입히는데 실랑이를 하느라 오래 걸렸다. 난 출근 시간 때문에 아이에게 소리를 쳤고 아이는 벌러덩 누워서 울어 버렸다. 우는 아이를 겨우 달래서 유치원에 보내고 나니 벌써 녹초가 되어 버렸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발걸음이 급해졌다.
출근해서 일을 하던 중, 유치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온몸을 너무 가려워해서 울다 지쳤다고, 혹시 아토피가 있는지 물었다. 아니라고 로션을 발라달라고 말을 하고 그때부터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당장 휴가를 낼 수도 없고 아이를 데리러 가기까지는 5~6시간이 남았다.
퇴근 시간이 되어 부랴부랴 유치원으로 향했고 아이는 아직도 울음이 남았는지 울먹거렸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친구 누구도 갔고 누구도 갔고 나 꼴찌야."
아이의 말에 울컥했다. 친정 엄마는 늘 아이를 1등으로 데리러 가셨다. 아이는 할머니가 1등으로 와서 좋다고 했었다. 본인은 힘드셔도 손녀를 유치원에 오래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으리라.
만약 친정 엄마와 같이 살지 않고, 엄마가 아이를 돌봐주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었을까. 아침 일찍 유치원에 보내고 밤이 되어서야 아이를 찾고 고작 하루에 2~3시간 함께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시계를 보며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으리라. 다시 한번 엄마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
유치원에서 집으로 데리고 오고 나서도 끝이 아니었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그 사이 밥을 하고 남편이 올 때까지 아이와 놀았다. 남편이 오고 다같이 조금 늦은 저녁을 먹고, 건조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쉴 틈이 없었다. 몸이 힘드니 입맛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여행을 가시면 늘 살이 빠졌다. 엄마는 이 많은 일을 혼자 다 하셨구나. 엄마가 해주는 일들이 당연한 게 아닌데 너무 당연히 여겼던 건 아닐까, 한번 더 돌아보게 된다.
엄마가 없는 바쁜 하루가 끝났다. 휴.
엄마가 있음에도 힘들다고 징징거렸던 나를 반성하는 하루였다.
누구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님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