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미지가 있다. 몇 해 전까지 그 기억은 내 상처이자 아픔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띵'했다. 같은 기억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그때 또 한 번 깨달았다.
이 기억을 꺼내려면 내 어린 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꽁꽁 감춰놓고 싶지만 살포시 꺼내본다.
어렸을 때 난, 지금은 상상도 못 할 대가족 사이에서 자랐다. 그 이상하고 불합리한 곳은 내향적이고 요령 없는 나에게 끔찍한 공간이었다. 초등학생도 안 된 나에게 술 심부름을 시키던 앉은뱅이 할아버지, 고성과 폭력에 노출된 채 살다 남은 거라곤 악다구니밖에 없던 할머니, 이따금 출몰해서 싸움과 분란을 일으키던 큰 아버지와 다리를 절던 작은 아버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참지 못해 집에 불을 질렀던 막내까지.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었다.
아빠는 그곳에서 거의 유일하게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었고, 집에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그곳에서 난 사랑은 커녕 관심 한 조각 받지 못했다. 애정결핍과 인정욕구에 시달리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도.
그곳에서 난 드러내지 않고 삐뚤어지는 법을 배웠다.
소리 없이 우는 방법을 배웠다.
원망과 증오, 울분과 한 등 온갖 부정적인 단어와 친구가 됐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에겐 조금은 생소할지도 모르는 이야기.
옛날의 나를 봤던 사람들에겐 고개가 끄덕여질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잊히지 않고
이따금 떠오르는 기억 하나를 꺼내보려 한다.
새까만 밤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혼이 났던 날.
할머니는 날 대문밖으로 쫓아냈다.
왜일까.
그 문이 더 이상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저 문은 절대 열리지 않을 거야.'
('저 문이 열린다면 들어갈 거야?')
얼마나 지났을까.
난 문을 뒤로하고 내달렸다.
칠흑 같은 밤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친구가 없던 난, 갈 곳도 딱히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달리다가 가로등 불빛이 보이면 잠깐 숨을 골랐다.
시골의 밤은 불빛이 없어서 더 새까맣다.
거리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그래도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
앞으로 가야만 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무의식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나도 모르게 나의 발은 아빠의 회사로 향하고 있었다.
아빠는 카케리어 기사였다. 자동차를 싣고 달리는 운전기사. 장거리 운전을 하기 때문에 어차피 회사에 가도 없다는 걸 이미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돌아가느니 가서 기다리는 게 나았다. 밤은 무서웠지만 집은 더 무서웠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리다가 망설임에 발걸음이 느려졌다가 개 짖는 소리에 놀라 다시 뛰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걸 그때 경험했다.
너무 어린 날에 겪어서 내가 그랬다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난 아빠의 회사에 갔고, 아빠의 동료를 만났고, 그분의 차를 타고 수십 킬로나 떨어져 있는 아빠에게로 갔다. 대문 옆을 박차고 뛰쳐나올 땐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때의 난 그 어떤 확신도 없었다. 그냥 참을 수 없었던 것뿐이다. 문이 열리든 열리지 않든, 그 자리에 더 서 있을 수 없어서 도망친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