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 조울증 아니야?
이런 말을 듣거나 보면 몸이 굳는다.
저기요. 그런 걸 검색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당신이 멀쩡하다는 증거예요. 진짜 조울증 환자는 자기가 멀쩡한 줄 알아요. 그런 걸 절대 검색하거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죠. 그래도 의심이 된다면 조용히 병원에 가보세요. '아니'라는 확답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혹시 이런 적이 있다면 예외예요.
일주일 동안 잠을 10시간도 안 잤는데 멀쩡하다. 멀쩡하다고 느낀다. 오히려 기분이 너무 미치도록 좋다. 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내 돈, 남의 돈 구분 못하고 돈이 없는데도 덜컥 건물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그 건물이 '당연히' 내 것이 되리라 여긴다.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이런 식의 돈 사고를 크게 친다.
세상에 못 할 일이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 실제로 '못할 일이 없으니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이것 때문에 법적인 문제에 휘말린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당신은 괜찮습니다. 조울증이 아니에요. 물론 100프로는 아닙니다. 우울증을 앓다가 나중에 조증 삽화를 겪는 사람도 있어요.
조울증은 굉장히 진단 내리기 어려운 병입니다. 울증 상태일 때는 우울증으로, 조증 상태일 때는 조현병, 정신분열 등으로 오진받기도 합니다. 전문가라고 불리는 정신과 의사들도 굉장히 오랜 시간을 환자와 함께 한 후에야 조울증 진단을 내려요.
여러분의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타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지 않다면, 그냥 힘든 걸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고등학생이라면 주의가 필요해요. 보통 조울증은 그때쯤 발병하거든요. 하지만 보통은 환자 본인보다는 주위에서 '의심'이 드는 게 먼저입니다.
안 그러던 애가 갑자기 확 달라졌을 때, 무섭잖아요.
카드를 줬더니 한도까지 긁어버리고, 각종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고, 잠도 안 자고 야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폭력적으로 변한다면 의심해 볼만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정말 죄송하지만 부탁드리고 싶어요.
'조울증'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쓰지 말아 주세요.
듣는 조울증 환자가, 그들의 보호자가 상처받거든요.
왜 나 '조현병인가 봐'라는 말은 안 하면서 '조울증인가 봐'라는 말은 하는지 씁쓸합니다.
'우울증 돋아', '죽고 싶어', '암 걸릴 것 같아' 같은 말들도요...
그런 건 가벼운 농담처럼 웃음과 함께 세상에 내던져질 단어가 아니에요.
한 가정을 박살내고,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거잖아요.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싶지만, 가끔 그렇습니다.
그냥 흘려들으면 될 말이, 상처로 날아와요.
니들이 뭔데, 그렇게 가볍게 그 말을 내뱉어.
그 단어의 무게를 한 조각도 알지 못하면서.
타인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단어가, 나에겐 현실이라서
아무 의미 없이 튀어나온 말에 혼자서 상처 입는다.
갈 곳을 잃은 날 선 마음은 상대에 대한 비하로 이어진다.
'교양 없어. 지식이 부족하네.'
그렇게까지 싸잡아서 깎아내리지 않아도 되건만.
언어에 한 대 맞은 마음은, 제 상처를 치유하기만 급급해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럴 수 있지
모를 수 있지
모르니까 그럴 수 있지
마음에 여유를 줘본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부탁하고 싶다.
'조울증'이란 단어를 가볍게 쓰지 말아 달라고.
그건 무섭고 아픈 단어니까
쓰지 말라는 강요는 결코 아니다.
그냥 부탁이다.
이제는 아니까, 그 말을 쓸 때 한 번만 생각해 주기를...
당신의 말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도 있어요.
당신에게도 그런 말이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