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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진 Sep 26. 2023

앰뷸런스 3번, 경찰차 1번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막차를 타고 집 근처 전철역을 막 나오던 그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스팸 전화도 오지 않는 야심한 밤에 누구의 전화일까, 이런 현실적인 생각보다 본능적으로 손이 먼저 떨려왔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쉽사리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진동도 무서워 핸드폰을 뒤집었다. 부재중으로 전화가 끊어진 후 메시지가 날아왔다.



'OO 경찰서 OOO 경찰관입니다. 어머님이...'



역시나였다.



쿵쾅쿵쾅.

심장이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뛰는 속도를 가눌 수 없어 결국 주저앉았다.



'아....'



피하고 싶은 순간이 기필코 오고야 말았다.

엄마는 병원에 가야 한다.

나는 엄마를 입원시켜야 한다.



비 오는 새벽, 10분이면 갈 수 있는 집에 가지 못하고 덜덜 떨면서 또 한 번 깨달았다.

우리는 평범하지 않다. 결코 그럴 수 없다. 평온은 깨졌다. 이제는 혼란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처음 엄마의 입원 순간을 본 건, 스물이 갓 넘었을 때였다.

삼촌은 엄마를 달랬고, 엄마는 삼촌을 피해 도망가면서 성질을 냈다. 그러다 앰뷸런스 차를 보고는 얌전해졌다.


그건 무슨 희극 같았다. 흑백이라면, 찰리 채플린의 영화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달까.



'이게 무슨 일이지?'



이해하기도 전에 상황이 앞서갔다.

내가 참여하지 않아도, 그저 보고만 있어도 삶은 흘러간다.



"여기 사인하시면 돼요."



정신 차리고 보니 병원이었고

난 엄마의 강제 입원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삼촌은 미리 싸 온 입원에 필요한 물품들을 건네고 계셨다. 그 일련의 행동들은 마치 공장에서 물건이 생산되는 것처럼 매끄러웠다.



엄마는 그렇게 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용 베드에 몸이 묶인 채 실려가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엄마는 간헐적으로 발버둥 쳤고, 고함을 질렀고, 비난과 원망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정신병원은 그런 게 일상인 곳이었다.



'난 대체 어느 세계에 발을 들이 민 거지?'



그 속에서 적응하지 못한 인간은 나 하나뿐이었다.







천근의 걱정과 만근의 두려움을 발에 걸고 집으로 향했다.

내가 오기 전에 엄마가 떠났길 간절히 바랐다.



바람은 언제나처럼 산산조각 났다.



걱정이 되었는지 이웃집 사람이 밖에 서 있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경찰차에 타고 있었다.

힘없이 멀어지면서도 나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다.



"괜찮아요? 쳐다보지 마요."



차갑게 내리는 빗소리

팔 언저리에 닿았던 따스한 위로

간신히 잡고 있던 정신줄


모든 게 아득해졌다.



'저건 엄마가 하는 말이 아니야'

'저건 엄마가 하는 말이 아니야'



주먹을 꽉 쥐며 되뇌었다.

괜찮아. 이 정도쯤은 처음도 아니잖아.




그 와중에 엄마는 또 사고를 쳤다.

멀쩡히 주차되어 있는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그건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차 주인께 사과를 하고, 사고 접수를 하고, 집에 들어와 쓰러지듯 누웠다.




'엄마를 어떻게 입원시키지.

또 앰뷸런스를 불러야 하나.

명함이 어디 있을 텐데. 가격이 얼마였더라...

부르려면 엄마를 잡고 있어야 하는데, 눈치가 빨라서 절대 안 될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온통 그 생각뿐인 밤이었다.







조울증이 끔찍한 건

주변 사람의 일상을 무참히 밟아 버린다는 데 있다.



나의 일상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엄마가 액셀을 밟고 돌진해 올지 몰랐다.

그 공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가족을 입원시켜요. 잔인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해받는 건 포기했다.

그것만이 내 삶을 지키는 길임을 그들은 모른다.



엄마의 입원

그건 언제나 내게 있어

생존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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