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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진 Sep 28. 2023

엄마가 같이 죽자고 했다


"죽여버리겠어"



어떻게 엄마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지?



눈물보다 기가 먼저 차 올랐다.

시큰해지는 코를 숨기며 고개를 돌렸다.

그 공간에 있는 모두가 내 눈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차 안에 같이 타고 있던 경찰관이

나를 향해 거칠게 뻗어지는 손을 잡아챘다.



"아!! 나 이거 성폭력으로 신고할 거야. 놔."


"아니, 가만히 계셔야죠. 위험해요."


"놔. 안 놔?!"



어쩌면 손 닿을 수도 있는 거리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전혀 엄마 같지 않은 차림으로

전혀 엄마답지 않은 눈빛으로

표독스럽게 내뱉는 말들.



손은 잡을 수 있어도

입은 막을 수 없으니까


자유로운 입을 무기로 삼아 엄마는 나를 난도질했다.



'아... 진짜. 지긋지긋하다.'






너 죽고 나 죽자는 말에 진심이 없다는 걸 안다.

상태가 괜찮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긋해질 목소리란 것도.

다정한 눈빛과 약간의 미안함을 담아 나를 쳐다보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쳐다보는 눈빛과

쏟아지는 말들에 담긴 악과 증오 또한 진짜다.



엄마는 지금 진심으로 나를 미워하고 있다.

나는 엄마의 자유를 빼앗아가는 악당이니까.

이제 몇 개월은 세상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할 테니까.

어쩌면 이 답답한 차 안과 차가운 병원 바닥이

엄마가 밟게 될 자유의 끝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자유로울 난

지금 이 순간

저 말을 듣고 그저 침묵한다.



삼킬 수 없는 독약을 입안에 머금은 듯

혀와 입 속이 아려왔다.


창밖을 보며

마음으로 최대한 귀를 막아봤다.



물론, 소용없었다.

창 위에도 엄마가 있었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설령 두 귀를 손으로 막았다 해도

귓가를 파고들었을 것이다.



저것은 최후의 발악

상처받지 말자

상처받지 말자






조울증 환자의 보호자로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일을 겪는다.



물론 누구나 이러는 건 아니다.

언니는 주로 돈 사고를 치고

나는 우울해진다.


그러나 우리의 엄마는

걷잡을 수 없이 폭력적으로 변한다.



조증 상태로 들어선 엄마는 무섭다.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무섭다.

그녀의 세상엔 무서움, 실패, 걱정이 없다.

거절을 참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무기가 된다.



무적의 엄마는

기적의 논리로

세상 모든 것과 싸운다.



예외는 없다.

나 이외에 모두가 적인 세상에서

홀로 외롭게 싸우다 붙잡힌다.



그래서 결국엔 이렇게 자유를 잃는다.







약만 먹으면 괜찮은데

평범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약을 끊을까



답은 간단하다.

약의 힘으로 '정상'적인 삶을 오랫동안 유지하면

어느 순간 그게 본래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게 된다.

나는 아무 문제없고, 약이 아닌 나의 '힘'으로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진짜로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참혹하다.


약을 끊는 순간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진다.


그걸 자기만 모른다.




그래서 또 이 모양 이 꼴이다.

나와 엄마는 응급차도 모자라서 경찰차를 탄다.



행선지는 병원

돌아오는 자리는 내 것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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