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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진 Oct 06. 2023

마음속에서는 수백 번도 더 엄마를 버렸다

"난 할 만큼 했어.

엄마 없는 셈 칠 거야."




언니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충격을 받은 건,

'그래도 엄만데 어떻게 그래'라는 마음이 아니었다.


그건, 그래.

선수를 빼앗긴 느낌이었다.


비장의 카드로 쥐고 있던 걸 잃어버린 기분.



그날, 난

엄마의 유일한 보호자가 되었다.

(아니, 그런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마지막 조증은 굉장히 오랜만에 발현했다.

전조 증상이 있었겠지만 같이 살지 않는 우리는 알 수 없었다.

한 달 전, 아니 2주 전만 해도 

멀쩡하게 같이 가족사진을 찍었던 엄마는

차를 끌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고를 쳤다.



외상을 하고

교통사고를 내고

가게를 차리고

폭력과 범죄를 저질렀다.



기가 질린 언니는 선언했다.

더 이상 자신은 책임지지 않겠다고

엄마에 대한 연락은 하지 말라고



119까지 불러 엄마를 잡아보려 노력했던 후라

뭐라 할 수 없었다.


사실, 내 속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더 뭐라 할 수 없었다.



'저 말을 하다니, 참 용기 있어.'




문득 지나간 시간 속에서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술만 취하면 폭력을 일삼던 아빠와 결혼하려던 새엄마한테

언니는 말했다.



"우리 아빠랑 왜 결혼해요? 하지 마요."라고.



같은 생각을 가진 난, 

타인의 불 보듯 뻔한 불행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언니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언니는 참 용기 있었다.








나는 왜 엄마를 놓지 못할까.

마음속으로는 수백 번도 더 엄마를 버렸는데

실제로는 왜 그러지 못할까.


마음이 여려서는 아니다.

그렇다면 아빠를 놓지도 않았겠지.

난 참 모질게, 단번에 아빠를 버렸다.

아빠에게서 뒤돌아섰다.



그런데 왜...?

아빠랑 엄마가 뭐가 달라서?



생각해 보면 아빠는 늘 나의 곁에 있었고

엄마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난 아빠가 아닌 엄마를 택했을까.



아빠를 폭력적으로 만드는 건 술이고

엄마를 폭력적으로 만드는 건 병이라서?



친가는 끔찍하고

외가는 그렇지 않아서?



내가 여자라서?


아니면

아빠를 버렸는데

엄마까지 버리기엔 양심이 아파서...?



나도 잘 모르겠다.



세상에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고

엄마를 혼자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고

그냥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다.



힘들 때마다 핑계처럼 올라오는

'엄마도 나를 버렸잖아'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엄마의 의지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힘들어도 안고 가야 한다는 가스라이팅에 당한 걸지도.



어쨌든 난

여전히 엄마를 붙잡고 있다.

종 잡을 수 없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이건 사랑일까, 연민일까, 결핍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어쨌든 난 엄마의 보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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