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충격을 받은 건,
'그래도 엄만데 어떻게 그래'라는 마음이 아니었다.
그건, 그래.
선수를 빼앗긴 느낌이었다.
비장의 카드로 쥐고 있던 걸 잃어버린 기분.
그날, 난
엄마의 유일한 보호자가 되었다.
(아니, 그런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마지막 조증은 굉장히 오랜만에 발현했다.
전조 증상이 있었겠지만 같이 살지 않는 우리는 알 수 없었다.
한 달 전, 아니 2주 전만 해도
멀쩡하게 같이 가족사진을 찍었던 엄마는
차를 끌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고를 쳤다.
외상을 하고
교통사고를 내고
가게를 차리고
폭력과 범죄를 저질렀다.
기가 질린 언니는 선언했다.
더 이상 자신은 책임지지 않겠다고
엄마에 대한 연락은 하지 말라고
119까지 불러 엄마를 잡아보려 노력했던 후라
뭐라 할 수 없었다.
사실, 내 속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더 뭐라 할 수 없었다.
문득 지나간 시간 속에서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술만 취하면 폭력을 일삼던 아빠와 결혼하려던 새엄마한테
언니는 말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난,
타인의 불 보듯 뻔한 불행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언니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언니는 참 용기 있었다.
나는 왜 엄마를 놓지 못할까.
마음속으로는 수백 번도 더 엄마를 버렸는데
실제로는 왜 그러지 못할까.
마음이 여려서는 아니다.
그렇다면 아빠를 놓지도 않았겠지.
난 참 모질게, 단번에 아빠를 버렸다.
아빠에게서 뒤돌아섰다.
아빠랑 엄마가 뭐가 달라서?
생각해 보면 아빠는 늘 나의 곁에 있었고
엄마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난 아빠가 아닌 엄마를 택했을까.
아빠를 폭력적으로 만드는 건 술이고
엄마를 폭력적으로 만드는 건 병이라서?
친가는 끔찍하고
외가는 그렇지 않아서?
내가 여자라서?
아니면
아빠를 버렸는데
엄마까지 버리기엔 양심이 아파서...?
나도 잘 모르겠다.
세상에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고
엄마를 혼자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고
그냥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다.
힘들 때마다 핑계처럼 올라오는
'엄마도 나를 버렸잖아'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엄마의 의지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힘들어도 안고 가야 한다는 가스라이팅에 당한 걸지도.
어쨌든 난
여전히 엄마를 붙잡고 있다.
종 잡을 수 없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이건 사랑일까, 연민일까, 결핍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어쨌든 난 엄마의 보호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