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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진 Oct 12. 2023

영원한 보호자는 없다

"사람이 왜 그렇게 이기적이에요?"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인지, 참.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아니, 기가 질렸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는 게 어떻게 이기적인 게 되지?

해고한 사람한테 제멋대로 적은 사직서에 사인을 하라고 하는 것이 더 이기적이지 않나?



"전, 못해요. 아니, 안 해요."



말도 안 되는 말을 뻔뻔하게 하는 사장에게

덜덜 떨리는 손을 숨기고, 단호하게 말한 뒤 일어났다.








2년을 일한 곳에서 손가락을 다쳤다.

시키지 않은 일이었지만, 종종 했던 일.


손재주가 좋았던 난, 재활용품으로 카페에 필요한 도구들을 척척 만들어 내곤 했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간지 얼마 되지 않은 커터칼이 플라스틱이 아닌 내 엄지를 가르고 지나간 것이다.



너무 놀라면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은 진짜였다.

그냥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살점이 뜯겨진 자리 위로 맺히는 핏방울을 그저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냅킨으로 지혈을 시도했다.



휴지 조각 몇 장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난, 매장을 떠나 위층 병원으로 향했다.

같은 건물에 정형외과가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셀 수 없을 만큼 바느질을 한 후, 의사는 겁을 줬다.

큰 병원에 가서 꼭 진료를 받아보라고.








손가락, 사지 절단 치료를 잘하기로 소문난 병원을 찾아갔다.

큰 병원 의사도 별 다를 건 없었다.

여러 검사를 한 후, 깁스를 해준 뒤 더 지켜보자는 말 밖에는...



그동안 사장에게서 여러 번의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한 '더 지켜보자는 말'을 전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러다 일을 잃게 되는 건 아닌가'하는 불안이 몰아쳤다.



깁스를 풀고, 원하면 일을 해도 좋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자마자

무리해서 업무에 복귀했다.


8시간 노동의 대가로 얻은 건 잔혹했다.

팔목이 심하게 퉁퉁 부었고

시간이 부족해 재활치료도 받을 수 없었다.



'이러다 손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면 어떡하지?'



그것은 공포였다.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내가

'더 쉬어야겠다'는 말을 한 건


정말, 그래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먹고사는 문제 이전의 문제였다.



차갑게 식는 눈동자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을 마주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같이 일 못해요."



그 뒤로 이어지는 핍박은 정상이 아니었다.

자발적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했고

산재를 취소하겠다 협박했으며

퇴직금에서 부당하게 돈을 깎았다.



5월부터 9월까지

한 여름동안

사장의 괴롭힘은

더위처럼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재활이 아니면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전화기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쿵쾅댔다.

핸드폰 위에 그 사람 이름이 뜨면 숨쉬기가 곤란했다.



"엄마, 나 병원에 가고 싶어."



노동청과 노무상담, 심리치료와 심리상담을 넘어

나는 발길을 끊었던 정신과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갔다.



10년 동안 챙겨 먹지 않은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3년 동안 끊었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나는

살고 싶었다.





혼자서는 버틸 수 없는 나에게,

엄마와 언니는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아,

세상에 영원한 보호자는 없다.



보호 받는 순간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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