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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진 May 23. 2023

우울증 약이 듣지 않아요

문제가 없다는 것이 문제


우울증 약이 듣지 않아요




몇 번 들었던 말이다.

지난달 엄마와 나의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은 뭔가 결심한 듯 말씀하셨다.




비전형적 정동장애 같아요
약을 꾸준히 먹어봐요




엄마와 언니가 조울증 치료를 받은 지 10년

둘의 치료기간을 다 합치면 아마 내 나이보다 많을 거다.

나까지 합치면 당연히 넘고...



두 사람의 보호자가 된 지 10년쯤 됐을까



간헐적으로 병원을 다녔다.

내 일로 간 날보다 보호자로 간 날이 많았다.

내 손에 쥐여줬던 다양한 약들은

내 입보다 내 방 서랍장 속으로 들어간 날들이 많았다.


난 괜찮으니까.

먹지 않았다.




그냥 조금 우울한 것뿐이야
삶이 우울하니까
우울할 수 있는 거잖아




세상 사람들처럼 신나고 재밌고 즐겁지 않아도

이대로 괜찮지 않나


수북이 쌓여가는 내 이름이 적힌 약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저걸 왜 먹어야 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먹든 안 먹든 별 차이도 없었다.

불안하고 가슴 뛰고 초조하고 손이 떨리는 공황, 불안 장애

잠을 잘 수 없는 불면증

그때 빼고는, 그런 증상들 빼고는 효과가 없었다.




보통 사람들이 100점 만점에
94,95점의 기능을 발휘하고 산다면
심근경색 환자는 83점,
효진 씨는 81점이에요.




아...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무언가 할 수 없는 이유가

무언가 하려고 할 때마다 힘들고 지치고 피곤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조울증, 양극성 정동장애는 쉽게 말하면 이렇다.
일반 사람들이 -10 ~10의
감정(기분)을 느끼고 산다면
그들은 -100 ~ 100을 왔다 갔다 한다.

우울증은 -100 ~10


나는 -40 ~ -10
기본적으로 베이스가 낮다.




생각해 보면 기분이 좋았던 적이 드물다

쉽게 우울에 빠지고

불현듯 밀려오는 절망감에 취약하다.


그리고 어떨 때는

그 속에 있는 게 너무 당연해서

기쁨이나 행복에서 도망친다



그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문득

찮지가 않다.


괜찮지 않은 게

괜찮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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