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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진 Oct 17. 2023

따로 또 같이 살아갑니다

 "나 이 집에서 나갈 거야"



같이 살던 언니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고양동 시골로 내려오기 전까지

우린 강남 한복판에서 살았다.

엄마의 권유로 살게 된 그곳은 우리에게 너무도 낯설고 별로였다.



놀만한 곳은커녕 저녁 10시가 넘으면 먹고 싶은 음식을 배달시키기도 못했다.

24시간 뭐든 배달되고, 언제나 복작복작했던 없는 게 없던 곳에서 살던 우리는

그곳에 영 적응을 못했다.



이사한 초반, 우리는 심하게 방황했다.

난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언니는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시간이 갈수록 우린 그곳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언니가 불쑥 선언을 한 것이다.


이 집에서 나가겠다고.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언니의 사정은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 나는?'

그게 문제였다.


언니가 없는 이곳에서 딱히 살 이유가 없었다.


'나도 이 집을 나가겠어!'



아빠를 벗어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대학을 알아볼 때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집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그 다음해 여름

우리는 하루 차이로 이사를 나갔다.


차가 있는 언니는 개발 중인 신도시로,

장롱면허인 난 교통이 좋은 구도시로



엄마는, 그곳에 혼자 남겨졌다.

아니, 남자친구랑 둘이 남겨졌다.


그게 문제였을까.

엄마는 우리가 떠난 지 4년 만에 조증이 왔다.








가까이 살았다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신호를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이따금씩 들었다.



엄마가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고

남자친구를 바꾸고

혼인신고를 했을 때도


내 마음 한쪽엔

아주 작은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것으로는 부족할까.

사실, 그게 부족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매일 엄마를 살피고 함께 살아야 한다면

엄마는 살아도 난, 

못 살 것 같다.



성인 여자 3명

넉넉지 않은 살림에 같이 사는 게 훨씬 이득이건만

우리가 따로 사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그걸 원하기 때문에

내가, 같이 살기 싫어서

내가, 나부터가 살아야겠어서.








나는 너무도 쉽게 타인의 기분과 감정에 휘둘린다.

아마, 너무도 어릴 때부터 

피라미드의 맨 아래, 최약체로 살아왔기 때문이리라.



나는 3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 사이에서도

평범함을 가장했던 4인 가족 사이에서도

엄마랑, 아빠랑, 언니랑 살았을 때도

언제나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최약체였다.



늘 남의 눈치를 보기 일쑤였다.

그게 몇 해전, 공황장애를 앓고 난 후에는

더 심각해졌다.



여전히 갑작스러운 연락이 무섭고

이따금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난 아직 괜찮지가 않다.



그래서 우린 따로 산다.

온전히 나 하나 감당하기에도 벅차서

모두가 그러해서


겨우 버티고 살고 있다.

그러다 힘들면 서로에게 기대고

심심하면 만나서 놀고

안쓰러우면 전화를 건다.






사람은 혼자 오롯해야 누군가를 감당할 수 있다.

내가 바로 서지 못하면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혼자라서, 따로 살아서,

우리는 각자 오롯하게 삶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리하여 누군가 한 명 힘들 때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고 잡아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따로 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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