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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진 Sep 16. 2023

한 달에 한번 정신과에 갑니다.

하루에 한 번 커피를 마시듯

일주일에 한 번 빨래를 돌리듯

한 달에 한 번 정신과에 간다.



더러운 내 마음속을 꺼내

향기로운 세제로 깨끗하게 빤 후

뽀송하게 햇빛에 말리는

그런, 아름다운 의미 따위는 없다.



그저 이번 달도 우리 가족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받는

하나의 절차일 뿐이다.



저지른 죄가 없어도 경찰을 보면 몸이 굳고

숨긴 것이 없어도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면

심장이 두근두근 하는 것처럼

잘못한 게 없는데도 조마조마하며 살다가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야 난 안도한다.




'아, 이번달은 무사해'




환자가 스스로 병원에 간다는 것은

병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엄마는 괜찮다

아직은.

우리는 괜찮다

이번달은.



한 달에 한번 엄마랑 '병원'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효녀'라고 말한다.

그게 아닌데 조용히 속으로 읊조린다.

그게 아니다.



엄마에게 병원이란

자발적으로 가지 않으면

결국 구급차나 경찰차에 실려 가게 되는 곳이다.



나에게 있는 선택지는

함께 병원에 가거나

강제로 병원에 가게 하는 것뿐이다.






처음 입원서의 보호자란에 내 이름 세 글자를 써넣었을 때 난 겨우 스물셋이었다.



혼자 살아본 적 없는 난

전기요금 하나 내는 법을 몰랐다.


연희동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막연함에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아니, 아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막연함이 눈덩이처럼 몸집을 불리며

나를 덮쳐왔다는 것 밖에는.



가로등 하나로는 밤을 물리칠 수 없듯

나 하나로는 살아갈 수 없다.




밤의 무게가 자꾸만 그림자를 붙잡고 늘어졌다.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갈 곳이 그곳뿐이었는데도.



제대로 독립하지 못한 그때의 내게

집이란, 공간이 아닌 사람을 의미했다.



어두운 골목길

그림자는 자꾸만 멈춰 섰다.

아무도 없는데 계속해서 뒤를 돌아봤다.



혼자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도 가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도 없는

멈칫멈칫하면서 꾸역꾸역 나아가는

5분이면 갈 거리를 30분이 넘어도 도착하지 못하는

그런 것.




보호자라는 역할을 강제받은 날

엄마를 잃고 집을 잃었다.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환자가 낫기 전까지 보호자는 보호자다.

조울증은 완치되지 않는다.

증상을 완화하며 살아갈 뿐, 보통의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난 죽을 때까지 엄마의 보호자다.



이 세상에 왜 내 집은 없을까

이렇게 많은 건물들 중에

왜 내것은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효녀가 아니다.

그냥 엄마를 잃고 싶지 않은 아이일 뿐.

세상에 내 집 하나 갖고 싶은 유목민일 뿐.

보호자의 삶을 감당하기 싫은 못된 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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