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병원 가는 날인 거 알지?"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근 한 달 만이다.
"응"
"아침 일찍 갈게."
"응"
엄마랑은 늘 할 이야기가 없다. 말이 이어지지 않아 전화는 그대로 끊긴다. 잠시 무슨 말을 더 했어야 했나, 하는 얇은 죄책감과 부채감이 몰려온다. 상식이 종용하는 '효도'와 '관계'라는 것이 만들어낸 어설픈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핸드폰 화면을 뒤집는다. 화면이 꺼지듯 내 마음도 꺼져버렸으면.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이대로 삶이 끝나버렸으면'
오늘이 절망스러워서가 아니다.
그저 내일 벌어질 일을 겪고 싶지 않을 뿐.
그 작은 생각만으로도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은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중독이다. 습관이다. 한 번은 어렵지만, 두 번은 쉽다. 언어가 가지는 힘은 놀라워서 생각할수록 '상상'에 취한다. 모든 문제와 근심이 해결될 거라는 안일한 '망상'과 일시적 '안도감'은 조금만 힘들어도 '그 생각'으로 도망가게 만든다.
'아, 병원에 가야 할 때가 맞나 봐'
괜스레 오늘 약을 먹었나 하고 봉투를 찾아본다. 다 먹었어야 할 약 봉투가 몇 개 남아있다.
'아, 약 남았네. 그래서 이런가 봐'
'내일은 이걸 꼭 선생님께 말해야지'
참 많이도 발전했다. 성장이라면 눈부실정도의 성장이다. 뒤집기도 못했던 아기가 벌떡 일어나 아장아장 걷는 것처럼 놀랍다.
엄마랑 언니의 보호자로 정신과에 다닌 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난 많은 약을 받았지만 제대로 먹은 적은 없다. 내 삶은 구질구질할지언정 위험하진 않았으니까. 무료할지언정 폭발하진 않았으니까.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조금 다를 뿐 전문가와 약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인정하고 나니 편해졌다. 죄책감과 부채감도 조금은 옅어졌다. 조금만 더 지나면,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내 안에 말들을 꺼낼 용기가 생길 것도 같다. 그때가 되면 조금 더 편하게, 엄마 앞에서 수다쟁이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
하고 싶은 말 중에서 할 수 있는 말을 골라내느라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엄마가 상처받지 않을까?
엄마의 상태가 나빠지지 않을까?
이 평화가 깨질 거 같은데, 굳이 할 필요가 있나?'
고르고 고르고 고르다 보니
할 수 있는 말은 언제나 적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질수록 내뱉을 수 없는 말은 늘어갔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공간만 공유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가끔 무게를 견디지 못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내뱉었지만 길어지지 못했다.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겉돌았다.
누구 하나 서로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을 구분하느라 '오늘의 날씨' 따위 말고는 할 말이 없어진 상태. 우리는 처음 본 낯선 사람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깊은 유대감과 상관없이, DNA 구조와 상관없이, 고착되어 버린 이 '대화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을 내릴 수 없어 뒤척임만 심해졌다.
몇 번의 고민 끝에 뒤집어진 전화기를 들었다.
'내일 봐'
'응'
'잘 자'
'❤'
문득 이모티콘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림 하나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서
그랬다고 여길 수 있어서
안도가 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