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진 Nov 12. 2023

글을 접는 마음

19살, 나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글을 쓰며 살아가보자.

그걸 직업으로 삼아보자.



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 하나로 글을 쓰고 꿈을 꾸고

시나리오 학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10년 뒤,

스물아홉의 어느 밤

나는 글을 접기로 결정했다.




10년이면 할 만큼 했다.

이 정도 했는데 결과가 없다는 건 아니라는 거다.

이런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난, 더 이상 쓰고 있지 않았다.


멍하니 커서만 바라보는 날이 늘었고

아예 컴퓨터를 켜지도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어느새 난,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입으로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됐지?




대학교 3학년때까지

난 눈을 뜨면, 감을 때까지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 하며 살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소재였고

소재를 엮어 스토리로 만드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게 불과 몇 년 전이었는데

스물아홉의 난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뭐가 날 이렇게 만들었을까?




사느라 바빠서, 쓰지 않는 날이 많아져서?

채우지 않고 쏟아내기만 해서, 속이 텅 비어버려서?

10년을 했는데,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아서?



모든 게 정답 같고

모든 게 오답 같다.


그때 내게 물어봤다면

난 답을 찾아냈을까.


지금은 알 수 없다.

알아도 바꿀 수 없다.



그때의 내가

포기하는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면,


'할 만큼 했어. 그만하자'가 아닌

'그래도 다시 해보자.' 결론 내렸다면


어떻게 하면 다시 쓸 수 있을지

치열하게 묻고 행동했다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물음을 던지기에

그때의 난 너무도 어렸다.

혹은 너무도 벅찼다.


그래서 난

울면서 도망쳤다.

어두컴컴한 도시의 단칸방에서

새하얀 창을 닫아버렸다.



이만하면 됐어.

이만하면 됐어.

괜찮아.

.

.

.




전혀 괜찮지 않았다.



괜찮은 듯 살았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괜찮지 않다는 걸

다시 쓰고 나서야 알았다.



이제는 더 이상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


안 써도 그냥 계속 쓰고 싶다.

계속 쓰는 사람이고 싶다.





이전 02화 글을 쓰지 않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