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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be Oct 24. 2021

3. 장례식에 괴롭히던 상사와 동료가 조문을 왔다.

나를 괴롭히던 상사가 부모님 장례식장에 찾아오면 기분이 어떨까?

 밉지만 고마워할까?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까?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질문이지만 상사에게 혹독하게 당하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다음 글을 읽어보길 바란다. 


사람은 한 번 나쁜 일을 경험하면 다시는 그 경험을 겪고 싶지 않아서 대책을 세우지만 나 같은 머저리들은 어리석게도 과거의 경험에 대해서 그저 지나간 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직장에서 상사의 불합리한 행동을 여러 번 경험했지만 상사가 매 번 갑자기 온화한 태도를 보여주면 상사의 불합리한 행동이 종결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사의 행동으로 화가 잔뜩 나 있다가도 상사의 갑작스런 온화한 태도를 보면서 내가 상사에 대해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여 상사에 대한 분노와 보복의 결심이 누그러진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구? 


오전에는 업무 보고서가 형편없다며 신입이라도 그렇게 일은 처리하지 않을 거라며,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벌레만도 못하게 취급하더니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갈 때는 나에게 먼저 뭘 먹을지 물어봐 주고, 식사를 하면서 주말은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퇴근할 때는 교통이 막히니까 빨리 귀가를 하라고 하며 오늘도 수고했다고 말해준다. 


나는 속으로, 

완전 싸이코네, 개XXX 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휴! 다행이네, 아직도 나한테 화가 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잊었구나, 하고 안심을 한다.


이런 일은 나만 겪은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혹독한 상사들이나 사람을 잘 이용하는 영악한 사람들이 어리버리한 부하나 동료들을 취급하는 방식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하를 계속 푸쉬를 하면 상대가 궁지에 몰린 쥐처럼 고양이를 물어 뜯을 수 있을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한 번 크게 밝더라도 작은 반창코 하나 붙여주면 오히려 고마워 어쩔줄 모르고 헤꼬지를 할 마음이 쑥 누그러 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사에게 머저리처럼 속아 넘어가는 것은 머저리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부득이 저지르는 실수다. 상대는 나보다 강한 사람이고 나는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의 지나친 행동으로 모욕을 당해서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상대가 나에 대해서 계속 안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불이익을 당하는 쪽은 약자인 나이기 때문에 은근히 불안해 진다. 그렇다고 이런 일로 상대와 부딪힌다면 1년 뒤에 인사 평가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한테 내 험담을 늘어 놓아서 나에 대한 안좋은 소문이 커지면 조직의 왕따가 될 수도 있다고 염려한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를 계속 싫어하고 멀리 해 봤자 나한테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가 태도를 바꾸면 일단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상대는 나에게 했던 행동을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를 아무 감정 없이 대하는데, 내가 상대에 대해 꿍해 있으면 나만 쪼잔하고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상대의 온화 해진 태도에 맞춰 나도 상대에게 온화한 태도로 반응하게 된다. 


역시 나 같은 머저리들은 상대를 판단할 때 상대의 악의는 금새 잊어 버리고 선의만 더 기억이 선명히 남아서 악인에 대한 쓸데 없는 자비가 충만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나 유명하고 카리스마 있는 연예인들이 어쩌다 좋은 선행을 해서 뉴스에 보도가 되면 그들 가까이에서 그들을 시중 드는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야비하고 악한 일들에 대한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그들의 선행만 기억하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이런 쓸데 없는 약자들의 자비가 상대가 이용할 수 있는 무기로 변하는 것을 어리석게도 알지 못한다.  


그래 아까는 내가 잘못하긴 했어, 그래서 상사나 선배도 어쩔 수 없이 심하게 뭐라고 했던 거야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혼동을 느끼며 나에 대한 이미지를 드디어 “밝아도 꿈틀거리는 지렁이보다 못한 머저리”로 굳혀 버린다.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사의 겉 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어리숙한 애송이에서 상사의 의중을 바라보고 상사의 태도를 의심하려고 노력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상사의 행동의 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상사가 나에게 가했던 부조리적 행동들을 잊지 말고 경계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 이런 상사들을 당장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까?


팔을 걷어 붙이고 상대와 당장이라도 맞장을 뜨거나 속에 있는 마음을 시원하게 쏟아 버리고 싶지만 뒷 감당을 할 자신이 없다면 상대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낫다. 싸움은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 때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상대에게 순수히 당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전달하여 상대의 멘탈에 조금씩 위협을 가하면서 상대와 부딪힐 수 있는 내공을 쌓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매 번 혼내던 상사가 갑자기 나에게 자상한 태도를 보일 때 내가 사용한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주말에 잘 지냈어?

  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커피 한 잔 할래?

  뭐라고 했어요. 일 하느라 잘 못들었어요. (경어를 쓰지 않았다.)

  갑자기 전화가 와서요, 조금 있다가요.

  잠깐만요, 지금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


-점심 식사 하러 갈까? 

 지금 바빠서 다음에 같이 해요.

 제가 속이 않 좋아서요 다음에 해요.


-좋은 아침이야! 오늘 일 하느라 수고했어! 이거 해줘서 고마워!

  침묵(입을 다물며 억지 웃음)


상사의 태도가 바뀌어서 친근하게 나를 대하면 나는 짧게 대답하거나 혹은 명분을 만들어 대답을 피하고, 상사가 칭찬을 해주거나 인사를 할 때도 굳이 대답을 하지 않고 시큰둥한 태도로 반응했다. 이런 식의 태도는 예의에 어긋난 태도가 아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상사가 나무랄 수 있는 명분이 되지 못한다. 상대는 나의 태도가 불순하다고 생각해서 나를 더 안좋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원래부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걱정은 무의미하다. 


상사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고마운 듯한 태도로 반응하면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일을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뼈를 깎는 노력으로 상대에게 아부하고 상대의 비유를 맞추고자 노력한다면 상대의 마음이 잠깐은 돌아설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오히려 상대에게 비유를 맞추기 위해 힘을 쏟고 노심 초사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는 것보다 상대와의 관계에 기대를 하지않는 것이 효율적이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회유하거나 상사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약자를 괴롭히는 악한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고 사회에서 활개를 치도록 방관하는 것은 조직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상대의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고 혼나도 쉽게 화가 풀어지는 무른 사람이 아니라는 신호를 상대에게 전달해 주게 되어, 상대는 예전처럼 나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서서히 갖기 시작한다. 그런데 머저리처럼 당하고 또 당하는 사람들은 이런 용기를 내는 것이 어렵다. 


“상사가 지금 나한테 잘 해주니까, 이 걸 기회로 상사와 더 친해져 봐야겠어,”

“그래도 그렇지, 상사가 나한테 아무리 화를 냈어도,

 지금은 온화하게 나를 대하니까, 

괜히 이 사람한테 나쁜 생각 가진 거 미안하네.”


제발 두 번 다시 속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이 여전히 상사에게 당하고 나서도 상사에게 쩔쩔 대지 못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사람은 절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침에 나를 무시하고 지금은 웃는 얼굴로 대하는 상사를 냉정하고 무뚝뚝하게 대하는 연습을 통해 당신도 충격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처음이 어렵지만, 두번째부터는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기만했던 상사에게 쓸데 없는 예의를 지켜왔다는 것에 대해 후회 감이 몰려올 것이다. 


서두에 했던 물음이다. 당신을 괴롭히던 상사나 동료가 부모님 장례식장에 조문을 온다면 기분이 어떨까? 

 나는 가끔씩 나를 괴롭히던 상사가 정말 내 부모님의 장례식장에 조문을 오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장례식장에서 그들을 보는 순간, 먼 길을 조문을 왔다는 생각에 잠깐 고마운 마음을 가질지 모르지만 장례식장 이후에 그들을 본다면 고마운 마음이 여운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공과 사를 구분하는 능력이 띄어나다. 그래서 장례식을 마치고 출근하여 일하는 나의 상실감에 대해서 배려해주지 않고 이전에 대했던 방식으로 똑같이 대할 것이 눈에 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를 괴롭히던 상사의 부모님 장례식장에 조문을 간 적이 있었다. 주변의 보는 눈도 있었고 최소한의 인간적 매너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조문을 갔다. 고인에게 예의를 표하고 유가족에게 인사를 할 때, 상사의 표정을 보니 많이 상심한 표정이었다. 회사에서 나를 그렇게 괴롭혔지만 부모를 저 세상으로 보낸 상사의 표정을 보니, 약간 찡하기도 하고 회사에서와는 다르게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상사를 포함한 유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장례식장을 곧 바로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바로 내 위에 선배(나보다 한 단계 직급 위의 상사)가 나를 비롯한 몇 명을 붙잡으면서 발인 때까지 장례식장에 남아서 상사의 손님들을 맞으라는 것이었다. 선배의 명령에 못이겨 장례식장에 남아서 일을 돕고 있었지만, 부모를 잃은 상사는 나에게 다가와서 고마워하기는커녕 조금 전의 안스럽게 보였던 사람과는 다르게, 장례식장에서 손님들을 잘 대접하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역시 악한 사람에 대한 괘난 동정심은 불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기분이 상해서 장례식장에서 몇 시간 일을 하다 집으로 돌아 가버리고 장례식 둘 째날, 장례식장에 와서 일손을 도우라는 선배의 지시가 있었지만 일이 있다는 핑계로 장례식장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상사는 부모님의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 뒤 회사에 출근했고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션]

-혹독하게 나를 대하는 상사가 가끔 온화한 태도로 나를 대한다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의심하는 연습을 한다.  


-악한 상사에 대한 태도

*온화한 태도에 대해 무심하고 담담한 태도로 반응하는 연습을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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