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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사회 생활을 되돌아보면 약자들 주변에는 약자들을 괴롭히는 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았다. 약자들은 주변의 악한 사람들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해서 학교나 회사에서 혹은 다른 조직에서“머저리”라는 라벨을 평생 붙이고 살아간다. 그래서 약자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 수 있기는커녕 자기 앞가림 조차 못하게 되어 자괴감에 빠지고 성공을 향한 삶과는 멀어지게 된다.
사람에게 덕을 쌓는 것은 인생의 성공의 법칙이지만 나를 괴롭히고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까지 덕을 배풀 수 있을까? 괴롭힘을 당하면 위축되고 분위기에 편승해서 주변 다른 사람들도 나를 무시하게 되는 상황에서 인덕을 베풀며 살기는 불가능하다. 나를 방어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강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나서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덕을 베풀 수 있게 된다.
성공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기대감을 갖고 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건만 악한 사람들에게 걸려서 좌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약자들이 악하고 영악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깨우쳤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약한 사람들은 강하고 악한 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거나 육체적으로 힘이 세질 필요는 없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면을 다스리고 어떤 태도로 악자를 상대하느냐에 따라서 나보다 강한 사람들을 손쉽게 상대하거나 혹은 손쉽게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회사에서 나보다 높은 직위의 상사에게 당하는 삶을 수년 간 살아왔지만 악하고 강한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나서부터는 나보다 지위가 높은 상사들을 만만하게 대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매일 매일 혼나고 무시 당하는 것이 괴로웠다.>
직장 생활에서 상사와(당시 나는 과장이었고, 상사는 부장이었다.)의 관계로 많이 힘들어 한 시절이 있었다. 내가 사람 관계를 못하는 지나친 A형이라 이렇게 직장 생활을 잘 못한다는 생각도 했다. 상사로부터 하루에도 몇 번을 호되게 혼나서 주눅이 들어버리고 주변의 동료들은 그런 나를 대할 때 무시하곤 했다. 지시한 업무가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혹은 자신의 지시에 반문을 제기할 때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다짜고짜 화부터 내고 상대를 무시하는 투로 혼내는 것이었다.
“차장 몇 년째인데, 이런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냐?”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너랑 정말 일하기 싫다.”
처음에 상사한테 혼났을 때는 동료들은 나를 혼내는 상사가 너무 심한 거 같다며 나를 지지해주는 듯 했다. 상사는 유독 나한테 심하게 대했지만 앞 뒤 논리가 맞지 않는 불합리한 지시를 해대는 사람이라 다른 동료들도 상사에 대한 불만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상사한테 혼나는 횟수가 많아질 수록 동료들의 나에 대한 동정과 지지는 한심함과 무시로 바뀌어 갔다.
“오늘도 깨지는 거야, 아이쿠 또 하루 종일 사무실 시끄럽겠네”
자신과 관계 없는 타인을 보듯 무기력한 방관자의 포지션을 선택한 동료들은 내가 상사한테 혼나는 모습을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면서 지루한 하루 일과에 다이나믹한 이벤트라도 생긴 듯 은근히 즐기고 있는 듯했다. 교회에서는 집사로 불리고 집에서는 아빠라고 불리고 회사에서는 차장님이라고 불리지만 사무실에서는 이런 직함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영락없는 얼간이로 둔갑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혼나면 상사한테 혼나는 그 자체가 무서운 것 보다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더 두려워졌고 상사에게 혼나고 동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다 보니 너무 주눅이 들어서 주변의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동료들에게 업무 요청할 하는데 실수를 해서 핀잔을 받지는 않을지?”
“상사가 요청한 것을 보고할 때 또 혼나지는 않는 걸까?”
그래서 동료들에게 간단한 업무 협조 요청을 할 때 조차 몇 분을 주저하다 업무 처리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고 또 상사한테 보고할 때는 혼나지는 않을까를 한 참 고민하다 늦게 보고를 해서 상사로부터 혼나는 생활이 반복이 되었다. 괴로운 나머지 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회를 다니고 있던 터라 힘든 상황에도 성경 구절로 위로를 찾고 사람들을 용서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태복음 5:39)”
그러나 나도 사람이다. 상사와 동료로부터 혼나고 무시 당하면 당시의 감정이 기억 속으로 고스란히 남아서 “덱스터(악당을 살인하는 살인범)”에서 봤던 잔혹하고 예술적인 살인 방법으로 상사와 동료들을 처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도중에 상사나 동료의 자리로 가서 볼펜 심으로 머리를 찍어버리거나 책상 서랍에 있는 호주케스로 입을 찍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하드코어적인 생각이 스쳐가기도 했다.
이런 분한 감정들은 끝내 분노로 변해서 나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짜증으로 표출이 되기도 하며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로에서 조금만 거슬려도 상대 운전자에게 욕을 하거나 집에 와서 아내나 아이들에게 자주 짜증을 부리고 협력 업체 직원의 사소한 실수에 발끈하기도 했다. 업무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눈을 떠 있는 동안 억울함과 분함이 번갈아 가며 치밀어 오르고 회사를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 뒤에 우울한 감정이 찾아오곤 했다. 그래서 현실을 잊기 위해 억지로 이른 저녁부터 잠을 자기도 했다.
아침, 저녁 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회사원들을 보면 아무 무사태평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점심 시간이면 식사를 끝내고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와 같은 회사원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직장인이기 때문에 성과 달성에 대한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지만 내가 겪고 있었던 인간 관계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성과 달성에 대한 스트레스는 작은 전기 충격에 대어 금방 사라지는 찌릿찌릿한 고통이라면 인간 관계 스트레스는 빠른 속도의 차에 치여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고통이었다.
성과 달성에 대한 스트레스는 나 자신의 업무 역량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성 유무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순전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자질이 뛰어나더라도 인간 관계의 문제가 생기면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동료들의 협조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인간 관계 문제는 성과 달성에도 영향을 준다.) 반면 인간 관계 문제는 외부와의 갈등이었고 외부로부터 받는 충격의 양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멘탈에 미치는 파장은 컸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는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 보려는 의지가 있었다. 과거 다른 회사에서도 상사와 동료들 간 갈등이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혼나고 무시당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재수 없게도 몹쓸 상사를 만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해서 적합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회사의 인사 부서와 사장에게 상사의 불합리한 점을 두 차례 보고하여 조치를 취한 적이 있었다.
상사의 잘못된 리더쉽을 고치기 위해서 사장은 상사를 외부 기관의 리더쉽 교육에 참석시키기도 했지만, 상사는 리더쉽 교육을 참석하고 나면 몇 일 동안은 태도가 온화하게 바뀌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런 내부 고발은 상사와 갈등도 제대로 해결 못하는 사람이라는, 나의 치부를 더 두곽시키는 꼴이 되었고 아무런 처벌 없이 그 자리에서 일 하는 상사를 보면서 허무감만 들었다. 재차 상사를 고발한들 상사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상사에게 조치를 취함으로써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 전쟁이나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나 가까운 주변에서 누군가의 괴롭힘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어도 부득불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가십 거리로 취급되는 것처럼, 약자의 고통은 제 3자에게는 일상 다반사 중의 하나로 인식이 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간 관계의 문제는 외부에서 원인을 찾아 봤자 문제 해결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나의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문제의 원인을 고민해 본 결과, 나와 상대 사이에 친근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친한 사이가 되면 업무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좋게 좋게 이야기해줄 수 있으며, 동료들에게 업무 요청을 해도 꼬치 꼬치 따지지 않고 잘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상사와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도 걸고 술자리에서 농담도 걸며, 휴식 시간에는 커피도 사며 나름 대화도 많이 나누면서 친근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했다.
원래 사람들한테 아부하거나 내키지 않은데 상대를 치켜세우는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자존심을 굽히면서 상대의 비유를 맞추는 것이 꽤나 힘들었지만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첨꾼이 되기로 선택했다.
그러나 나를 대하는 상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실 때면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도 나누며 거리감이 좁혀진 것처럼 느껴졌지만 다음 날이 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서 나를 혼내고 무시했다. 나를 적대시하던 상대들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친근하게 다가가려 했던 노력은 헛된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차 문제의 원인을 고민한 결과,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상사의 기대치를 맞추지 못하는 부족한 업무 실력이 원인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 전 회사에서는 나름대로 인정 받는 사람이었지만, 유독 지금 회사의 상사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못 마땅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하면 상사의 기대를 100% 만족시킬 수 있을까?
나름 열심을 내서 상사의 업무 지시를 해나갈 방법을 고민하며 상사의 기대를 맞추려고 노력 해봤지만 여전히 상사의 기대에 맞지 않았는지 호되게 혼나는 상황은 멈추지 않았고 주변 동료들의 홀대는 지속되었다.
다시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바라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처럼 자주 혼나는 동료 직원과 나의 공통점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드디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무실의 다른 부서에는 나처럼 자주 혼나고 무시 받는 동료가 있었는데 우리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상사의 화를 더 자극하고 동료들의 무시를 더 자극하는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생각 없이 사람을 대하는 의식, 그리고 이런 의식에 의해 표현되는 상대에 대한 태도”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나쁘거나 예의에 어긋났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대할 때 “이 녀석은 혼내도 되고, 무시해도 된다.”는 상대의 인식을 부추기는 태도를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원인을 파악하고 나는 곧 바로 상사와 동료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2014년에 입사해서 2018년 동안 4년간 상사와 동료에게 무시를 받고 심지어 왕따가 되기까지 했던 나는 2019년부터 상대에 대한 나의 이미지가 바뀌고 나를 대하는 상사와 동료들의 태도도 바뀌는 것을 눈에 띄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관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상사와 동료를 대하는 것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상대에 대한 주도권을 잡는 요령도 터득하게 되었다.
설마 이런 일이 진짜 있을 거라고 의심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를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사와 동료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심지어 지금의 상사는 나의 눈치를 보기까지 하며 상사를 꼼짝 달싹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며 나를 무시했던 동료들도 나를 대할 때 예의를 차리고 있다.
4년 동안 상사나 동료에게 당했던 것이 여전히 잊혀지지 않아서 나를 괴롭혔던 상사나 동료에게, 상대의 빈틈이 보이면 종종 칼 날을 들이대며 상대를 쩔쩔 매개 할 때도 있다. 그 때의 짜릿함은 옛날에 즐겨 했던 오락 게임 “스트리트파이터(무술 배틀 게임)”에서 “Ryu(케릭터중의 하나)”가 상대의 빈틈을 발견하면 “어류겐”을 외치며 모든 기를 주먹에 집중하여 상대의 턱 밑에 정통으로 “어파커트” 를 올려 치는 통쾌한 기분이다.
“인간 관계의 문제도 해결 방법이 있구나”,
“상황이 바뀔 수 있구나”
A 형이라 인간 관계가 꼬이고 사람들한테 쉽게 무시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고, 그래서 A 형은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다는 편견은 잘못된 생각이었으며 문제는 상대를 대하는 내 의식과 태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