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0일
#241
8월의 끝자락,
깊어가는 밤에 책상 앞에 앉아
차분히 나의 여름을 정리해 본다.
올여름은,
어느 날 문뜩 [여자 없는 남자들] 속 키노에 빠져
온전히 하루키의 세계로 빨려 든 시간이었다.
그렇게 찾은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는
신선한 활력이 되었고,
그곳에 다녀온 후 한참을 잊고 있던
[직업으로의 소설가]를 다시 꺼내 들었고,
그것은 데뷔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부터
청춘 3부작이라 불리는 [양을 둘러싼 모험]까지.
4부작으로 [댄스댄스댄스]까지 넣기도 하지만
일단 나는 [양을 둘러싼 모험]까지만 읽기로 했다.
원래 하루키가 정한
[바람의 노래를 들어]의 타이틀은
[HAPPY BIRTHDAY AND WHITE CHRISTMAS]
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책의 표지 위쪽에 써진 아니 숨겨 둔 그 문구가
[양을 둘러싼 모험]에 다시 한번 등장했을 때는
작은 비밀을 함께 공유한 것처럼 행복했다.
그러는 사이 정기적으로 라이브러리를 방문했다.
신기할 만큼 갈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었고
하얀 벽에 그려진 티셔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는 단순히 기뻤다.
[양을 둘러싼 모험]을 읽은 후에는
양 사나이가 그러진 벽면 앞
핑크 의자에 앉아 한참을 뿌듯해했다.
데뷔 3부작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처음에 툭툭 끊어지는 느낌의 문체도
문장을 반복해서 읽게 하는 깊이도 좋았고
점점 변해가는 작품 세계도 흥미로웠다.
3부작을 다 읽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꺼내어
데뷔작을 썼을 때의 이야기가 담긴 부분도
다시 읽었다.
그리고 단행본으로 다시 산 [여자 없는 남자들]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책장에 꽂지 않고
오며 가며 눈에 잘 띄도록 서랍장 위에 세워 두었다.
그리고
새로운 [노르웨이의 숲] 문고본을 데려와
낡은 [노르웨이의 숲] 문고본 옆에 곱게 꽂아두었다.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쯤
다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새로 산 레코드플레이어는
무더위 속에서도 나를 몇 번이고
중고 LP 판을 찾아 나서게 했다.
처음 디스크 유니온에서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테마별로 분류된 숍의 규모도 물론이지만,
것보다 그곳을 찾는 마니아들의
LP 판을 고르는 능숙한 손놀림과
그 손놀림에 따라 LP 판이 움직이며 내는
빠르게 타다닥거리는 소리에 압도되어
한참을 멍하니 구경했었다.
그보다 신기한 건 그곳을 찾는 사람의 대부분이
그런 마니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찾고 있는 게 너무 분명한 듯
새로 입고된 아이들을 매의 눈으로 확인한 뒤
바람처럼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에너지가 좋아
처음 방문한 후 며칠을 계속 이어서 갔고
3일 후쯤에야 점원에게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있었고
숍의 시스템에도 조금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 이후 규모가 조금 작은 숍도 찾았다.
점점 뭘 사야 하는지 명확해지자
발걸음을 하는 것도 점점 더 즐거워졌다.
소설 숙 키노의 바에서 흘러나왔고
잡문집에서 읽은 1937년 녹음한
빌리 홀리데이의 [I CAN'T GET STARTED]를
발견한 날은 너무 기뻐 잠이 오질 않았다.
가을바람이 불면
주인의 취향이 한껏 묻어나는
자그마한 숍들도 둘러볼까 한다.
가을바람을 따라 시모키타자와의 골목길을
헤맬 생각을 하니 도쿄가 여행처럼 설렌다.
그렇게 LP 판을 야금야금 하나씩 데려와
밤이면 불빛을 줄이고 책상에 앉아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하루키의 책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다음은 위스키다.
마시지 않고 향만 음미해도
미안하지 않을 적당한 위스키를 찾고 있다.
물론, 소설 속에 등장했던 위스키 중에서.
그리고
금요일 밤 혹은 집에 들어가기 싫은 어느 밤에
위스키를 옆에 두고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는
편안한 재즈 바도 찾아보기로 했다.
올 여름이 가을로 이어져
나의 낮과 밤은 더 깊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