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여행
밀린 수다가 너무 많아서
너무 오랜만의 만남이니까,
그래서 그녀와 나는 호캉스를 택했고
그렇게 나의 올해 마지막 여행이 시작되었다.
호텔은 잠실 롯데호텔 월드로 정했다.
둘이서 보내기 적당한 사이즈의 트윈베드 룸
그리고 창가 너머로 펼쳐진 멋진 뷰,
1박 2일 짧은 일정이긴 하지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 기분을 만끽하기엔
모든 것들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간간이 차를 달리며 바라보던 서울타워를
바로 눈앞에서 보니 느낌이 조금 새로웠다.
그리고
언제가 시간이 되면 전망대에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순식간에 조만간 시간을 내어 꼭이라는 마음으로
바꿔 놓았다.
26층에서 내려다보는 석천 호수와
빼곡히 들어선 크고 작은 건물들
그리고 그 뒤를 에워 썬 산 풍경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거대함을
한 번 더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룸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있고는
자그마한 테이블을 창가 자리로 옮겨와
백화점에서 사 온 음식과 와인을 펼쳤다.
그리고 다음은 그칠 줄 모르는 수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많이 창의적이고 조금 엉뚱하고
언제나 유효기간 없는 아이디어로 꽉 차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일상이며 여행이며 생각이며 일이며)
모든 것들이 나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 기분 전환이 되어주기도 하고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했으며
또 강한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바깥세상의 일루미네이션이 모조리 꺼질 때까지도
작은 호텔 룸의 잔잔한 캐럴은 꺼질 줄 몰랐고,
취기가 몸에서 온전히 빠져나가
다시 출출함이 찾아올 때까지
우리들의 수다는 마침표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김없이 아침은 밝았다.
(물론 밤을 꼴딱 새운 건 아니다)
한정된 시간이 더없이 짧고 빠르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의 수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시작했다.
아침 침대 속 편안한 수다도
야경을 사이에 둔 밤 수다만큼이나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조식 타임을 갈아먹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우리가 레스토랑으로 내려간 시간은
조식 타임의 삼사십 분 전.
이제 곧 음식이 정리되는 시간이라는 걸 알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일단 음식을 담아 테이블로 나열했다.
모닝 뷔페 느낌을
완벽하게 상실한 모닝 테이블.
음식을 담아 나르는 시간만큼
음식을 즐길 시간은 줄어 들었고
그만큼 음식의 맛도 서서히 증발해 갔다.
차갑게 식은 커피 잔을 들고
그제야 눈이 마주친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의 여행 인생에,
모닝 뷔페에 첫 손님으로 등장해
레스토랑을 잠시 독차지한 경험은 있어도
모닝 뷔페의 마지막 손님으로
레스토랑을 독차지 한 적은 처음이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웃는 동안
어느새 우리가 앉은 테이블을
제외한 모든 테이블이
크리스마스 런치 테이블로 바뀌었고
결국
우리는 음식을 모조리 비우지 못한 채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퇴장했다.
그렇지만
그걸로 수다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순 없었다.
룸으로 돌아온 그녀는 프런트를 연결해
정중히 레이트 체크아웃을 부탁했고
덕분에 우리는
마지막 차 한 잔의 여유를 벌 수 있었다.
재밌었고 유익했고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더한
충분한 힐링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