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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 쌈밥/게으름을 반성하며,

소소 일상

by 우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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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점심상으로

부추무침과 시금치나물

그리고 시원한 된장국을 더해

불고기 쌈밥을 완성했다.


엄마의 건강이 조금 회복되었다.

예전 건강하셨던 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지금의 상태를 이대로 유지할 수만 있어도

우리에겐 기대 이상의 성과인 것 같다.

엄마의 하루 세 끼를 책임지기 시작하면서

매일 예쁜 밥상을 차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규칙적인 식사 시간을 지키려 애쓴다.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도

거의 모든 일과를 최대한 규칙적으로.

물론 나의 애씀보다

엄마의 노력에 대한 결실이겠지만,

아무튼

처음 병원에 실려 가셨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우리는 이 시간이 얼마나 오래갈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최대한 이 시간들을 잘 즐기자 했다.

물론 그렇게 다짐을 하고서도

종종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모조리 행복인 것 같다.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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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우동이 좋다며

다카마츠로 여행을 떠났던 게,

그냥 먹고만 가기엔 너무 아쉽다고

오미야게로 우동면을 사 온 게.

그 모든 게 엊그제 같은데...

무심코 꺼내든 우동면의 유통기간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유통기간이 꽤 긴 반건조면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

유통기간이 지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커다란 냄비를 꺼내어 당장 면을 삶았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다녀올 때만 해도

우동에 대한 애정이 하늘을 찔렀었다.

잔파도 사서 송송 썰고

생강도 하나하나 즙을 내어

언제든 우동 생각이 나면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냉동해두었다.

대신 그 이후 어느 알 수 없는 시점부터

모든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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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찬물에 식힌 면을 그릇에 담고

버터 조각처럼 보이는 냉동 생강 즙과

파를 올리고 우동 쯔유를 적당히 뿌렸다.

아, 텐카스도 함께.


사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만 해도

이런 계획은 아니었다.

얼음 물에 힘차게 씻은

탱글탱글한 우동면을

커다란 그릇에 담고,

갓 튀겨낸 적당한 사이즈의

새우튀김을 두 개 나란히 올린 다음,

살짝 거칠게 간 무 즙과

불린 미역을 적당히 더하고

가츠오부시도 곁들여.

음... 달걀은 올릴까 말까

뭐 그런 상상을 하며

풍성한 우동 한 그릇을 그렸는데

그 상상은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나의 게으름이

우동면이 최상의 상태에서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을

철저하게 뭉개트린 것이다.

아아,

바보 같은 나.


그런데

이 대충 만든 우동은

이 순간에도 왜 이리 맛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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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밤 야식 한 번 더로

우동 한 봉지를 말끔히 끝냈다.

이렇게 후다닥 먹을 아이를

두 석 달을 그냥 방치해 두다니...

미안하다.


배부른 밤에

게으름을 깊이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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