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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이칸지로 기념관[河井菅次郎記念館],

교토 여행

by 우사기 Mar 14. 2025

호텔에서 기념관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을 때

버스를 빽빽이 메웠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기요미즈데라 부근에서 하차했다.

이제야 텅 빈 버스 뒤 칸에 앉아

교토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이대로 그냥 쭉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을 때,

안내 방송이 들렸다.

우마마치[馬町]

여기가 바로 하차해야 할 곳,

버스 정류장에서 기념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이로리가 있는 풍경이

이 계절과 잘 어울린다.

흙과 불꽃의 시인이라 불리었던

카와이칸지로,

카와이 집안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기념관은

설계에서부터 작은 가구 하나하나까지

그의 손이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직접 거주했던 자택과 공방은 물론 가마까지

그때의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기념관은 너무 붐비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한가롭지도 않아

천천히 둘러보며 쉬어가기 좋았다.

거주 공간과 공방으로 이어진 복도에서

만나는 자그마한 방,

살짝 엿보는 창밖 풍경이 평온하기 그지없다.

비 그친 후의 정원을 내려다보며

[생활이 일이고 일이 생활]이라 했던

이곳에서의 삶을 잠시 상상해 본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동안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반쯤 비에 젖은 모습으로

어느 문 앞에서 발을 멈추더니

문을 열어달라는 듯

나지막이 야옹을 외쳤다.

공방 쪽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쉬어가기 편하도록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그의 작품인 의자 하나하나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사했다.

창 너머로 보이는 작업 공간도

손때 묻은 의자의 느낌도 너무 좋아

한참을 이곳에 머물렀다.

바로 조금 전까지 사용했던 것만 같은

생동감 넘치는 전시 공간,

로쿠로 앞으로 나란히 줄지어 있는 도예 도구들.

이곳이 직접 도자기를 빚던 곳이라 생각하니

이상하게 가슴이 설렌다.

(거주 공간과 공방을 잇는 복도에는

도예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의 규모는 입구에서 볼 때보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가장 안쪽은 교토에서 유일하게 현존한다는

귀중한 오름가마.


어느 인터뷰에서 그의 손녀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평소엔 놀이터처럼 뛰어놀았지만

한 번 점화하면 불은 삼일 밤낮 타올랐는데

그때는 이곳이 마치 성역처럼

지금은 접근하면 안 된다는 기운을

어린이였던 그때도 강렬히 느꼈다고 한다.

어느 책에선 그가 두 번째 가마를

유난히 좋아했다는 글도 본 것 같다.

가마 둘레를 걸어가며

직접 볼 수 있도록 되어있길래

슬리퍼로 갈아 신고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가마를 오르는 길 옆 나무 담벼락,

그 사이로 가을이 흘러내렸다.

이 은은한 빛이 아니었다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서늘해지는 느낌에

아마도 끝까지 오르지 못했을 것 같다.


숨바꼭질을 했다면

술래가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을 자리를 발견하고 기뻐했다

막상 술래가 찾지 못하자

무서워졌을 것 같은,

뭐 그런 느낌.

잠시 또 딴 생각을 하다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다른 관람객 소리에

서늘한 느낌은

다행히도 금세 사라졌다.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와

이번엔 이층으로 올라갔다.

곱게 정돈된 다다미방,

인기척을 하고 들어가면

누군가 나와 반갑게 맞아 줄 것만 같은.

지금도 누군가가 그대로 살고 있는 것 같은

그 누군가가 매일 아침 꽃을 가져다 놓은 것 같은

온기 가득한 풍경들에

자꾸만 이곳이 기념관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기념관을 둘러보는 동안

어느새 이곳의 온기에 묻혔는지

이층에서 내려다보는

이로리가 있는 풍경도

처음 입구에서 봤을 때보다

더욱더 따사롭게 느껴졌다.

다시 일층으로 내려와

윤이 반질거리는

커다란 원목 테이블에 앉아

도예에 관련된 서적들을 뒤적였다.

떠나고 싶지 않게

발을 붙잡는 것들이

이곳엔 너무 많다.

누가 문을 열어주었는지

정원에서 봤던 그 고양이는

어느새 테이블 옆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있었다.

이름이 에키라고 했나,

숨을 쉴 때마다

가느다랗게 움직이는 하얀 수염을

살짝 건드려보고픈 충동을 억누르며

그제야 밖으로 나왔다.

참,

기념관에서 몇 발작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치가와야 커피가 있다.

(길게 늘어선 줄에 이날도

카페 방문은 포기해야 했지만)


다시 내비치는 햇살이 좋아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타지 않고

조금 더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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