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B Oct 17. 2021

선생님이세요? 결혼은 하셨고요?

나를 알아가는 명리 공부

  10여 년 전 동생을 따라 유명하다는 철학관에 갔다. 처음 사주를 봤던 경험이다. 그때 나는 '점을 보러 간다'는 표현을 썼다. 점을 보는 곳의 이름이 '철학관'이라는 것에 조소 섞인 웃음을 웃었던 나였다. 뭐가 딱히 궁금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재미 삼아 동생을 따라나섰던 것 같다.


  철학관은 다 쓰러져가는 삼층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건너편에 성당이 있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건물로 냅다 뛰어들었다. 나는 가톨릭을 사랑하지만 게으름으로 성당에 가지 않는 가톨릭 신자다. 그때도 냉담 중이긴 했지만, 무언가 죄를 짓는 느낌 때문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가톨릭 신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 30%,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70%를 손끝에 담아 성호를 그으며 계단을 올랐다.


  좁고 낡은 계단에서는 향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무언가 엄청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한복을 곱게 입고 부채를 든 여인이 나를 노려볼 것 같은 상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철학관 문을 열었을 때, 고개를 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부에는 많은 책들이 보기 좋게 정돈되어 있었다. 사주를 봐줄 선생님은 등산복 차림을 한 중년의 남성이었고,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우리의 등장을 보며 일어서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심지어 강의를 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칠판까지 눈에 띄었다.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 공간이 나쁘지 않게 여겨졌고, 긴장을 풀어도 되겠거니 생각하였다.


선생님이세요?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상담이 진행되었다. 동생과 나는 예의 바르게 두 손을 무릎에 두고 생년월일시를 불러드렸다. 한자를 휘갈길 것이라 예측했으나 이 선생님은 컴퓨터 자판에 생년월일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사주팔자는 서기로 표현된 태어난  순간의 연월일시를 옛사람들이 사용하던 부호체계로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 예전 같았으면 두꺼운 만세력 달력을 일일이 뒤져가며 찾아냈을 테지만, 이제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순식간에 사주팔자(옛날 달력이라고 해둘까?)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세력이 뭔지 전혀 몰랐던 터라 인터넷 사주를 통해 커닝을 하려 하나 하는 의심을 품기도 하였다. 


  "언니 사주 먼저 봅시다. 선생님이세요?"


  앗! 그걸 안다고? 순간 의심 가득한 질문들은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동생과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서로를 응시하였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어딜 가나 사주를 물으면, 선생님인지 물어본다. 생년월일시만 넣었는데, 그걸 알 수 있다고?


  "결혼은 좀 힘드시겠어요."


  앗! 그걸 안다고? 그래, 내가 결혼 생활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동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중고대학 친구들을 통틀어 내가 가장 먼저 결혼을 했을뿐더러 아이를 셋이나 낳았으니, 동생이 고개를 갸웃거릴 만도 한 것이다. 같은 말을 듣고도 해석이 달라진다. 사주를 잘 해석해서 운명을 잘 읽어내는 사람이 용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걸 듣는 사람이 상대를 용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이런 경험은 계속되었다. 어딜 가나 사주를 물으면, 결혼을 하기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는 거지?




  명리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아직 나는 내 운명을 예측하지 못한다. 다만, 힘든 시기가 오는구나 혹은 조금 편해지겠구나 하는 느낌은 있다. 그러면 내가 그동안 이 공부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남들이 볼 때 무심한 사람처럼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는 집안일과는 거리가 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려 한다. (아이들은 내 요리를 맛없어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아이들을 휘어잡으려는 엄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잔소리가 나오려 할 때마다 입을 틀어막는다. 나는 참 곰 같은 아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남편의 손을 꼭 잡아준다. 나는 참 실속 없이 퍼주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받을 때보다 줄 때 행복하니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참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집안일이나 꼭 해야 하는 일을 미루면서까지 몰입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앎을 나누는 일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그렇게 살아볼까 한다. "선생님이세요?", "결혼은 좀 힘드시겠어요." 이 말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나를 알아가게 되었다.


  음양과 오행의 틀 속에서 사주팔자의 글자들이 서로 관계한다. 예를 들어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에너지의 글자만 있고 안으로 자신을 자제시키고 싶은 에너지의 글자가 없으면 그 사람은 속을 드러내고 표출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에너지의 글자는 없고 자제시키려는 에너지의 글자만 있으면 그 사람은 말을 참는 일이 당연하다 여길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명리를 공부하면 먼저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그냥 그러려니'가 가능해진다. 이때 '그러려니'는 포기하는 심정의 '그러려니'가 아니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의 '그러려니'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이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어디로 치닿을지 모를 위험한 것이다. '그냥 그러려니'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쥘 수 있게 된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먼가 보다. 조금 전까지 아이들을 들들 볶았다. 학교 다녀왔으면 제발 물통 좀 꺼내 놓으라고, 숙제 빨리하고 양말 바로 벗어 놓으라고... 그게 뭐라고.


  하지만, 화가 나는 걸 어쩌겠냐는 말이다. '그냥 그러려니'가 되었다 안되었다를 동전 뒤집듯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