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오이의 맛
과거 SNS에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커뮤니티가 화제 된 적이 있다. 특정 야채를 싫어하는 건 단순한 기호의 문제지만 대상이 왜 하필 오이일까라는 점은 의아했다. 아니, 이 맛있는 오이를 굳이 모임까지 만들어 거부해야만 하는 목적이 뭘까. 오이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묘한 불쾌감마저 들었다. 물론 뒤늦게 오이가 체질적으로 받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장난 섞인 이름과 달리 당사자들은 나름 진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그래도 그렇지 내 절친 오이가 이런 취급을 받다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오이와의 만남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반듯하게 껍질 깎은 오이를 손톱만 한 크기로 잘라 입안에 넣어주었던 건 기억난다. 학교에 입학할 무렵엔 오이 하나를 통째로 들고 혼자 다 먹었다. 콩알만 한 아이가 오이 하나를 시원하게 먹어치우는 걸 대견해 하면서도 한편으론 앞으로 들어갈 오이값 걱정을 하지 않았을까. 가족 중 오이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어머니는 팍팍한 살림에도 장을 볼 때마다 오이를 사는 걸 빼먹지 않았다. 특이점이 있다면 난 항상 오이를 생으로 먹는 걸 선호했다. 오이소박이를 비롯해 첨가물이 들어간 오이 음식들은 입맛을 전혀 자극하지 못했다.
나의 오이 사랑에 동력을 달아준 건 할아버지였다. 옥상에 텃밭을 일구던 할아버지는 한켠에 오이 씨앗을 추가했다. 대놓고 얘기는 안했지만 손자를 위한 수줍은 선물이었다. 나는 오이가 열리는 걸 지켜보기 위해 매일같이 옥상으로 올라가 직접 물을 주었다. 넓은 이파리가 나고 넝쿨 식물답게 줄기가 위로 타 올라갔지만 정작 나타나야 할 오이는 형태를 보이지 않았다.
- 아직 멀었다. 좀만 더 참고 기다려봐라.
할아버지는 보채는 나에게 인내심을 강조했지만 오이는 여전히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추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작은 오이를 발견했고 며칠이 지나자 급격히 몸집을 불리며 생장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따 먹을 수 있는 크기까지 성장해 첫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내가 준 물과 정성으로 성장한 오이의 맛은 시장 오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쾌하고 짜릿했다. 인내의 시간을 넘어 찾아온 달콤함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오이의 힘을 가장 많이 받았던 때는 두 번째 직장을 퇴사하고 난 20대 후반 무렵이었다. 석연치 않게 회사를 도망치다시피 나와 몇 년의 시간을 방황하며 보냈다. 말이 좋아 방황이지 그냥 무기력한 방구석 젊은 백수 생활의 미로였다. 이즈음 나는 친한 형 두 명과 주말마다 산에 올랐다. 산보다 바다를 좋아했지만 이때만큼은 자꾸만 산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산은 짓누르며 상처 줬던 세상과 잠시 단절한 채 신선한 기운을 주입해주었다. 똑같은 길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반복의 연속이지만 왜 사람이 힘들 때 산을 찾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돌과 흙과 풀과 마주하는 발걸음 속에 거대한 산이 주는 울림과 위안은 도심의 아스팔트에서 길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산에 오를 때면 항상 형들이랑 같이 먹을 오이 세 개를 챙겼다. 우리는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북쪽 산들을 집중적으로 올랐다. 가는 길이 멀어도 높이와 등반 경로가 적당히 험해서 당일치기 코스로는 제격이었다. 특히 북한산을 자주 탔는데 돌산 특유의 거친 기운이 가로막아 정상인 백운대까지 가는 길이 마냥 평탄하진 않았다. 우리는 정상으로 가는 힘든 길목 앞에 다다르면 배낭을 내려놓고 바위에 앉아 다 같이 오이를 먹는, 일명 오이 타임을 가졌다. 오이 타임을 통해 들러붙은 땀을 식히고 얼마 남지 않은 정상을 향해 가는 에너지를 충전했다. 하산할 때는 오이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다들 가벼운 몸으로 내달렸다.
산을 도피처로 삼던 시간은 늦긴 했어도 결국엔 지나갔다. 삶은 일견 다채로워 보이지만 실은 무수한 반복의 오르내림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걸 산이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그 속에 오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오이가 선사하는 그 청량함을 나는 여전히 굳게 믿는다. 인생의 과정 대부분은 포물선보다 계단식으로 찾아오는 법. 지루한 넝쿨의 시간을 지나 어느 순간 껑충 자라있는 오이처럼 한 계단씩 성장해 나가는 내 모습을 자주 느낄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