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훈의 이야기
“당신은 가만히 있어요!”
성자가 영훈에게 자주 썼던 말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숨어있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신경 쓰지 말라는 배려와 당신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는 굴종의 의미가 그것이었다.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대부분 영훈은 성자의 말을 따랐고 실제로도 영훈의 노년의 삶은 가만히 있는 사람 쪽에 가까웠다. 영훈의 활동범위라고 해봐야 인근에 있는 점빵 철물점 약국처럼 집 주변 반경 100미터를 벗어나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는 동네 주민도 없었고 방에서 철 지난 신문을 보거나 라디오를 켜놓고 낮잠을 자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영훈도 가만있지 않은 공간이 있었는데 바로 옥상이었다. 사람도 동물처럼 자신만의 영역이 있어야 숨통이 트이는 법인데 영훈에게는 옥상이 그랬다.
가족 누구도 옥상에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옥상이 그의 소유가 된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영훈은 그곳에서 볼품없던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그는 이사를 올 때마다 자신의 손재주를 활용해 옥상에 정원과 창고를 직접 만들었다. 별다른 도면 없이 고물상에서 주워온 나무와 철판을 이어붙이고 니스칠과 페인트질을 하다 보면 금세 그럴싸한 창고가 지어졌다. 등짐을 지고 벽돌과 흙을 손수 퍼 날라 만든 정원은 배수로와 개폐식 지붕까지 겸비한 아름답고 생동 넘치는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그곳에서 이름도 생소한 온갖 씨앗을 심다보면 어느새 줄기가 솟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었다. 어차피 노인의 시간은 넘치도록 많았기에 영훈은 혼자 옥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어린 시절 영훈의 손재주에 감탄한 적이 많았다. 비행기, 탱크, 방패연, 팽이 같은 온갖 장난감들이 마법처럼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기 때문이다. 한창 로봇만화에 빠져있던 어느 날, 나는 로봇대백과 사전에 실려 있는 조악한 설계도 하나를 내밀었다.
“ 할아버지, 슈퍼 태권브이 만들어주세요”
“ 허허, 이건 안 돼 ”
“ 너무 커서 그래요? 재료는 내가 고물상 가서 가져올 테니까 만들어주세요 ”
“ 그래도 안 돼. 다른 거 뭐 만들어줄까? ”
“ 치! 됐어. 필요 없어요.”
창고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지저분하니 좀 내다버리라는 가족들의 잔소리에도 그는 다 쓸모가 있을 거라며 손수 만든 수납장에 차곡차곡 개어 넣었다. 가족 친지 외에 사람들과 거의 교류가 없다시피 한 영훈에게는 어쩌면 말없는 공구 나무 철판 플라스틱 등이 사람보다 더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를 보고 있노라면 영훈이라는 사람 자체가 참 식물과 닮아있고 어울린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학교 화단에 강낭콩을 키우는 수업이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자라 들떠 있었는데 웬 일인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반면 영훈이 옥상에 뿌린 씨앗들은 하나도 죽지 않고 정원을 가득 메워나갔는데 신기하면서도 은근 샘이 나기도 했다. 단지 운이 좋았던 건 아닐 거고 아마도 식물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아닐까.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정원에 올라가 제 자식처럼 상태를 살피며 돌봤는데 이 느리지만 끈질긴 애정이 씨앗들에게 생명의 숨을 터주었을 것이다.
나는 해를 넘어가면서 재화의 가치에 눈뜨기 시작했다. 성장하는 아이의 변덕은 종잡을 수 없는 법이라 그가 만들어준 장난감들에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이에 발맞춰 세상도 영훈의 세계보다 빠르고 복잡하게 흘러갔다. 마침내 치매가 찾아오면서 그는 옥상의 기억을 서서히 잃어버렸다. 영훈은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치매에 걸려도 식물처럼 행동했다. 말수는 더더욱 줄어들었고 땅에 뿌리박은 것처럼 움직임 역시 극도로 제한되었다. 얼굴에 희로애락의 감정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아직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듯 배변만은 악착같이 혼자 힘으로 해결했다. 운동량 부족으로 몸은 나날이 부풀어 올랐지만 정신은 잎맥만 남은 낙엽처럼 바스라지고 있었다. 영훈은 더 이상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고 그의 공간을 보살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옥상의 식물들은 하나 둘씩 시들고 먼지만 쌓여가는 창고는 흉물스럽게 제 모습을 바꾸었다. 무릇 창조의 과정은 고난해도 파괴의 절차는 간소한 법. 마침내 옥상의 정원과 창고가 해체되었다. 영훈은 자신의 에덴동산이 파괴되는 그날에도 말뚝에 묶인 소처럼 눈만 끔뻑거릴 뿐 좋다 싫다 말이 없었다.
이번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써보자 결심하고 글감을 모으다 보니 할아버지의 이야깃거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인생 자체가 조용히 살다 조용히 떠난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확실히 두 사람은 장르부터가 다르다. 할머니가 다이나믹한 액션이라면 할아버지는 흥행과 동떨어진 잔잔한 독립영화였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할아버지의 인생도 그게 전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할머니 못지않게 내 성장의 시간을 옥상 정원의 벽돌 사이사이를 채운 시멘트처럼 조용하고 단단히 메꿔준 사람이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을 살다 간 옥상위의 남자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가져봐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