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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Sep 18. 2023

그녀의 날계란밥

성자의 이야기


성자는 평소 집안 살림에 관심이 없었고 이 때문에 집안일은 며느리인 어머니의 몫으로 돌아갔다. 모양새만 보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유세 부리는 것 같지만 막상 두 사람 간 충돌은 거의 없었다. 성자는 딱히 간섭이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고 어머니도 그냥 자신의 일인 양 묵묵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성자가 가사에 무관심한 건 그렇다 쳐도 할 줄 아는 음식이 거의 없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땐 주방일은 여자가 하는 게 당연시 생각하던 시대였다. 아무리 소질이 없다한들 기본적인 밑반찬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건 이례적이었다. 기실 성자가 바깥일을 하거나 직업을 가진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영훈이 가사 일을 맡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게 그는 부엌 출입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며느리를 보기 전까지 둘은 대체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물론 늘 먹을 게 부족했던 때라 이런 개념 자체가 사치일수 있다. 하루 세 끼 입술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감지덕지고 손이 번잡한 요리나 반찬투정 같은 건 상상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다행히 삼대가 모여 사는 집 맏며느리인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뛰어나다는 평을 들을 만큼은 아니지만 성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고 어떤 음식이든 본연의 맛은 이끌어 낼 수 있는 야무진 손을 지녔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어머니는 자주 병원을 들락거리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집안에 여자라고는 둘 뿐이라 살림은 오롯이 성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매사에 질보다 양을 추종하는 사람이었다. 뭐든 많은 게 최고고 그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어렵고 궁한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배불리 먹는 걸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때문에 성자의 식탁에서는 용도에 맞지 않는 용기와 정량이 배분되었다. 밥은 공기가 아닌 국그릇에 국은 양푼 대접에 담았다. 한창 성장할 나이라 식욕이 왕성할 때임에도 그 양을 다 소화하기에는 부담이 갔고 이는 가족 모두에게 해당되었다. 성자는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밥상머리에 앉아 밥 먹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 눈길이 신경 쓰여 빠르게 숟가락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밥 더 줄까?”

“아니, 아니 배불러요.”

대답을 빨리 안하면 순식간에 그릇에 밥이 투여되므로 무조건 빨리 대답해야 했다. 밥을 남겼다고 뭐라 하진 않지만 옆에서 죄수 감시하듯 지켜보면 안 먹을 수 없게 된다. 남겨도 된다는 말의 속뜻은 남기지 말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나는 하루빨리 어머니가 돌아와 상황이 반전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성자의 음식 솜씨는 시중에 널려있는 할머니 간판이 붙은 원조 손맛과는 거리가 먼, 까다롭지 않은 내 미각 기준으로도 낙제점이었다. 실상 만든다는 차원보다는 가진 재료를 섞는다는 개념에 가까웠다. 성자의 음식들은 어딘가 다 조금씩 하자가 있었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합의 것들이 자주 상 위에 올려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 유독 인기를 끄는 음식이 하나 있었다. 이건 솔직히 음식이라고 하기도 뭐한 데 바로 날계란밥이었다. 갓 지은 밥에 날계란을 풀고 간장 한 스푼 넣어 비비면 끝인데 날계란밥과 김치만으로 밥그릇을 싹싹 비워내는 걸 본 성자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안면에 미소가 번졌다. 이후 밥상에는 날계란밥이 수시로 올라왔다. 가끔 마가린을 섞거나 감미료를 첨가하고 노른자가 터진 프라이를 올리는 등 자신만의 변형을 꾀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성자의 요상한 음식들을 참아가며 먹는 거보다는 날계란밥이 나았다. 네 남자는 불평 없이 하루 한 끼는 꼭 날계란밥을 먹었다. 달걀,간장,김치,쌀밥의 조합이 만든 질긴 힘은 어머니 없는 긴 시간들을 채우고 견디게 만들어 주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돌아오자 주방의 주인은 다시 바뀌었고 날계란밥은 더 이상 식탁에 오르지 않았다.

     

대개 어릴 때 질리도록 먹은 음식은 어른이 되어 반사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많은데 날계란밥은 그렇지 않았다. 계란을 활용한 음식들은 맛없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지금도 나는 종종 집에서 날계란밥을 해 먹곤 한다. 간편한 한 끼 식사로서의 편의성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더 맛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나는 날계란밥의 맛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그 시절 날계란밥은 단지 한 끼의 식사가 아니었다. 자신의 형편없는 음식 솜씨에 실망하던 가족들의 배를 채울 수 있었던 성자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큰 기쁨의 축은 가족들이 밥을 맛있게 많이 먹는 순간일 테니까. 문득 할머니를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남아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근사한 걸 바랐지만 아무렴 어떠랴. 나는 여전히 날계란밥을 싫어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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