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와 영훈의 이야기
초등학교 졸업식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그즈음 어머니의 몸 상태는 계속 악화되었고 아버지 역시 졸업식 참석이 어려웠다. 아버지가 그래도 막내아들 졸업식인데 누군가는 가야 되지 않냐 고 말을 꺼내는 순간 성자는 한 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다. 나는 아무도 올 필요 없다고 했지만 성자는 기어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무도 오지 말라는 건 진심이었다. 물론 다른 애들처럼 어머니가 직접 와서 축하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란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투병생활이 장기화되면서 나는 어머니의 부재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에 대한 거부감도 특별히 없었다. 할머니가 오는 게 창피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학교로 가족이 찾아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싫었고 이런 성향은 어머니가 건강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식 날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해도 진심으로 서운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암튼 성자의 졸업식 참석은 정해졌는데 문제는 그녀가 영훈에게도 같이 가기를 닦달했다.
“여보, 내랑 같이 가야지. 손자 졸업한다는데 가만 있을거요?”
“당신 혼자 가면 안 돼?”
영훈은 영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어차피 성자의 말을 거역할 순 없었다. 사실 성자가 영훈의 동참을 강요한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졸업식 날 사진을 찍어야 되는데 성자는 카메라 사용법을 몰랐다. 디지털 카메라가 없던 시절이라 아무렇게나 찍을 순 없고 정해진 필름의 숫자만큼만 잘 찍어야 하는데 기계에 무지한 성자에게는 적잖은 부담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영훈에게 카메라의 기능과 조작법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셔터 누르기, 조리개 노출, 뷰파인더 보기, 구도 잡는 법 등을 가르치는 동안 영훈은 개인교습 받는 학생처럼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아버지의 말에 집중했다.
운동장에서 식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오자 교실 뒤편과 복도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학부모들이 서 있었다. 대부분은 학생들의 어머니였다. 요즘 아버지들과 달리 그때 아버지들은 학교행사에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고 가는 것 자체가 좀 모양 빠진다는 인식도 있었다. 선생님이 한 명씩 졸업장을 나눠주고 있던 그때 뒤에서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성자가 영훈의 손을 잡은 채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두 노인이 움직이자 홍해가 갈라지듯 길이 이어졌고 마침내 교실 뒤편 정중앙 자리에 둘이 떡하니 섰다. 나는 속으로 (아 진짜! 왜 저래) 를 속으로 외쳤지만 이미 벌어진 사태는 어쩔 수 없었다. 성자는 마치 부대의 소대장이라도 된 양 정면에 서서 선생님과 눈을 맞췄고 영훈은 억지로 끌려 나온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돌렸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된 졸업식이 끝나자 성자는 정량적 성애자답게 부담스러운 대형 꽃다발을 품에 안겼다.
지금까지 성자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영훈이 활약할 순간이었다. 그는 카메라 렌즈뚜껑을 열고 조리개를 맞추고 뷰파인더를 체크했다. 뭔가 맘에 안 드는지 재차 포즈 변경을 요청했고 성질 급한 성자는 빨리 안 찍고 뭐하냐며 짜증을 냈다. 솔직히 내가 봐도 좀 심할 정도로 하나 둘 셋 신호가 잘 떨어지지 않아 답답했다. 필름 한 통을 다 소비하는 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중국집으로 갔다. 간짜장과 군만두를 시켰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의 그릇에서 면을 덜어주었다.
“할매 할배가 와서 안 부끄럽더나?”
“와 안 부끄럽겠나. 딴 애들은 다 지 엄마 델고 오는데 야만 우리 같은 늙은이 왔는데”
“아까 보니 할마시도 몇 명 보이던데 못 봤소?”
“내가 가만 있자 캤는데 와 그래 밀치고 들어갔노”
“그래야 야가 잘 보이재. 할매 할배 오는 게 영 없는 거보다는 낫재? 우리가 한 사람 몫아치는 안 했나.”
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굳이 살을 붙이지 않고 간짜장만 부지런히 먹었다. 원래 짜장면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날의 간짜장은 면발이 더 쫄깃쫄깃하게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졸업식 같은 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 아니라서 두 사람이 오지 않았어도 별다른 심경의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며칠 뒤 영훈이 직접 사진관에서 그날 찍은 사진을 보여줬을 때 약간의 감동을 받았다. 실수하거나 이상하게 나온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평소 약간의 손 떨림이 있어 사진이 잘못될까봐 걱정했다는 영훈의 말을 듣고 나자 더더욱 그랬다. 그날 그렇게 고심하면서 셔터를 눌러야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두 분이 졸업식에 오길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이 대형 꽃다발과 사진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겠나. 그날 성자가 사람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선 이유가 일차적으로는 자기중심적 성향이 작용했겠지만 그 속에 숨은 다른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지금 너에게 엄마는 없지만 우리가 있지 않느냐. 늙고 볼품없지만 좌청룡 우백호처럼 이렇게 딱 버티고 서 있으마. 늙은이도 둘이 합치면 한 사람 몫아치는 할 수 있단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라. 그날 너끈히 한 사람의 몫을 해준 두 사람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