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조 브랜드 CFO 7편
나는 CFO가 아니다.

by Lucky Nine

[색조 브랜드 CFO 생존기] 7편나는 CFO가 아니다


직전 회사는 임직원이 천 명이 넘었다.보고 체계는 정교했고, 시스템은 명확했다.

수치는 논리를 증명하는 도구였고, 회의는 결정을 위한 자리였다.

그런 내가 지금 일하는 곳은, 겨우 마흔 명 남짓한 스타트업이다.


보고서도 회의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사람 간의 공기다.

예전에는 이렇게 일했다.

손익 예측 보고서를 제출하면, 그 자체로 충분한 논리가 되었고

수익성 비교표 하나면 대부분의 회의는 설득되었고

승인된 자료는 별다른 충돌 없이 곧 실행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다르다.

'오늘 이 물량을 넣는 게 맞을까?'

'이번 달은 어디에 힘을 줄까?'수치보다 감각, 감각보다 맥락이 우선이다.

1,000명이 넘는 규모의 회사에선 시스템이 나를 지켜줬다.

지금은 내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그건 단지 표를 만들고 규정을 정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흐름과 말의 온도를 읽고 정돈하는 일이다.


어떤 날은 회계팀장이 되고,

어떤 날은 인사 담당자가 되고,

어떤 날은 브랜드 무드를 설명하는 사람이 된다.

"나는 CFO다"라는 말은 더 이상 정확하지 않다.

Peter Drucker는 이렇게 말했다.

“What gets measured gets managed. But not everything that matters can be measured.”
"측정되는 것은 관리된다. 하지만 모든 중요한 것이 측정되는 것은 아니다.”

즉, 숫자로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가장 중요할 수 있다.


나는 요즘, '필요한 역할을 메우는 사람'이 되고 있다.

역할은 바뀌고, 숫자의 무게도 달라진다.

예전엔 자금계획서를 분기 단위로 작성하고,

DCF(Discounted Cash Flow)나 ROE(Return on Equity)로 전략을 논의했다면,

지금은 유동성과 자금 흐름표가 손익계산서보다 앞선다.


예전엔 분기별 예산을 계획했다면,

지금은 하루 단위의 자금 흐름을 실시간으로 읽는다.

전엔 투자자에게 설명할 손익을 고민했다면,

지금은 오늘 팀이 무너지지 않을 구조를 먼저 고민한다.


사람 수가 줄면, 정보의 흐름이 빨라진다.

정보의 흐름이 빨라지면, 결정은 더 직관적으로 바뀐다.

직관이 많아질수록, 숫자는 더 유연해야 한다.


내가 지금 매일 쓰는 숫자는, '설득의 논리'가 아니라'협업의 공기'를 위한 언어에 가깝다.

나는 CFO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이 팀이 하루를 잘 버티게 만드는

밸런서이고,

중재자이고,

관찰자이다.


다음 편 예고

색조 브랜드 CFO 8편: 브랜드를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keyword
이전 06화색조 브랜드 CFO 6편: CFO의 일은 어디까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