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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드사 출신이다.
그중에서도 숫자와 리스크를 철저히 따지는 부서에 있었다.
컨설팅도 거쳤다.
수치와 논리가 맞으면, 상대는 설득된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그런 나에게 브랜드 업계는
완전히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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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혼란스러웠다.
ROI는 명확했고,
기회비용도 구체적으로 산출 가능했다.
“지금 이 제품은 BEP(손익분기점)를 넘기기 어렵습니다.”
“재고 회전율도 낮고, 타 SKU 대비 기여도가 낮아요.”
“같은 비용이면 더 빠르게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옵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들은,
브랜드 내부 회의에서 아무런 힘을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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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팀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했다.
“그 제품, 우리 팀이 가장 애정을 쏟았던 프로젝트예요.”
“지금 타이밍에 이 제품이 다시 나오면 감정선이 살아날 것 같아요.”
“수치론 설명 안 되지만, 이건 브랜드의 리듬 문제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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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업계에서 숫자는
전부가 아니라, 참고자료일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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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제품은 소량 리오더로 진행됐다.
그리고 예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수치로 따지면 BEP 언저리를 간신히 넘긴 정도였지만,
브랜드 팀은 '의미 있는 커넥션'이라고 평가했다.
내 계산에는 없던 항목,
‘브랜드 정서 유지 비용’이라는 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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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비용 효율이 정답이라면,
왜 사람들은 효율보다 감정에 반응할까?"**
브랜드는 숫자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브랜드는 숫자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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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여전히 BEP 공식을 쓰지만,
그 앞에 이런 질문을 하나 더 붙인다.
- 이 제품은 브랜드가 감정적으로 지켜내고 싶은 무언가인가?
- 이 결정이 숫자는 맞지만, 브랜드를 지치게 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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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의 일이란,
단순히 이익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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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예고
색조 브랜드 CFO 6편: CFO일은 어디까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