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조 브랜드 CFO 3편: 감정 피로

by Lucky Nine

[색조 브랜드 CFO 생존기] 3편

브랜드가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는 이유 – 감정 피로가 히어로 제품을 삼켜버린 시대

---

CFO로 새로 합류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같은 브랜드 팀장에게 똑같은 말을 두 번 들었다.

“작년에 정말 잘 나갔던 제품이에요.”

“이번에도 반응 좋았어요. 정말 잘 만든 거였거든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기획부터 유통, 콘텐츠 반응까지 모두 잘 짜인 제품이었다.

심지어 나도 샘플을 테스트해보고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제품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소비자의 피드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리오더 물량은 고스란히 남았고,

그 자리엔 ‘왜?’라는 질문만 남았다.

지금 나는 이 현상을 이렇게 부른다.

감정 피로.

---

제품이 감정선에 제대로 올라타면, 단기간 폭발력이 생긴다.

그런데 감정은 오래 가지 않는다.

익숙해지고, 반복 노출되고, 예상 가능한 순간

소비자의 마음은 ‘사고 싶다’에서 ‘굳이?’로 돌아선다.

그 시점에 이르면 제품이 아무리 잘 만들어졌어도

감정적으로는 끝난 것이다.

감정은 불꽃이고, 브랜드는 그 불을 붙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같은 불을 오래 태우면, 결국 그 감정은 타버린다.

---

재무 관점에서 제품 수명은 보통 이렇게 본다:

- 초도 물량: 시장 반응 테스트

- 리오더: 본격 유통 확대

- 3개월 내 수익 회수, 6개월 이상 팔리면 성공

하지만 감정선은 그렇게 길지 않다.

요즘 소비자 감정의 유효기간은 4주.

감정이 가장 뜨거운 시기는

런칭 후 3~4주 사이에 집중된다.

그 시점을 놓치면

제품은 유통상으론 살아 있지만

감정선에서는 이미 사망한 상태다.

결국 우리 브랜드는

6개월 동안 팔 수 있는 제품을

4주 안에 끝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

이게 바로 브랜드가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는 이유다.

제품은 계절을 타지만,

감정은 훨씬 짧은 호흡을 갖는다.

브랜드가 시즌마다 새 제품을 내는 건

단지 유행을 좇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자의 감정 피로를 리셋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

그 결정은 내가 내린 건 아니었지만,

그 결과를 마주하는 건 지금의 나였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부터 어긋났는가’를

숫자 대신 시간으로 읽기 시작했다.

- 제품별 감정 곡선이 가장 높았던 시점은 언제였는가?

- 그 후 판매 곡선과 감정 곡선은 얼마나 어긋났는가?

- 감정이 꺼지기 전, 우리는 어떤 신호를 놓쳤는가?

이 질문들은 숫자로는 대답되지 않는다.

하지만 숫자에 시간을 덧씌우면

다음 시즌의 결정을 더 빠르게 할 수 있다.

---

CFO라는 자리는

단순히 손익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브랜드가 감정을 어떻게 쓰고,

어디서 소모당하며,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를 읽는 자리다.

요즘 나는 회계 장부보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먼저 본다.

매출 그래프보다 제품 언급 주기의 리듬을 먼저 읽는다.

브랜드의 생명은 감정의 호흡 위에 있다.

---

다음 편 예고

히어로 제품은 이제 나올 수 없는가 –

소비자의 감정은 하나의 제품에 얼마나 오래 머무를 수 있는가



keyword
이전 02화색조 브랜드 CFO 2편: 감정은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