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조 브랜드 CFO 2편: 감정은 빨랐다
CFO로 새로 합류하고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손익보다도 SKU별 재고 현황표였다.
‘작년에 정말 잘 나갔던 제품이에요.’
브랜드 팀장이 설명해준 제품의 이름을 재고표에서 다시 봤을 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잘 팔렸는데… 왜 이렇게 많이 남아 있지?’
실제로 판매 데이터 곡선을 열어보니 초도 물량은 완판이었고,
바이럴도 크게 붙은 제품이었다.
그런데 2차 리오더 이후, 곡선은 뚝 꺾여 있었다.
급등 후 급락.
무엇이 이 변화를 만들었을까?
그 제품은 브랜드가 유명 캐릭터와 콜라보를 진행했던 아이템이었다.
감성적으로도 비주얼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았고,
컬러 자체도 유행을 잘 타고 있었다.
초도는 소비자 반응이 폭발적이었고,
그에 따라 리오더가 결정됐다.
하지만 생산–입고–유통이 완료되어 다시 풀렸을 무렵,
시장 분위기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우리 제품은 그대로였지만,
소비자의 감정선은 이미 한 계절을 넘어가 있었다.
그때 나는 이 브랜드에서 ‘감정의 속도’와 ‘공급의 속도’ 사이의 간극을 처음 실감했다.
- 제품은 잘 만들었고, 반응도 확인했다
- 숫자로 보면 리오더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 하지만 감정은 우리가 생산을 마칠 즈음, 이미 다음 트렌드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결정은 내가 내린 건 아니었지만,
그 결과를 마주하는 건 지금의 나였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부터 어긋났는가’를
숫자 대신 시간으로 읽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감정은 빠르고,
공장은 느리고,
회계는 더 느리다.
그 콜라보 제품은 실패한 게 아니다.
초도는 분명 성공이었다.
다만 우리가 그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엔 시스템적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수치로 남아 있었다.
CFO는 숫자를 다루지만,
이제는 감정의 리듬도 읽어야 하는 시대다.
- 초도 반응이 좋을 때, 우리는 얼마나 빨리 다음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 감정이 꺾이기 전에 생산과 유통은 대응 가능한가
- 타이밍을 놓쳤을 때, 누구의 결정이 느렸는가
요즘 나는 재고를 숫자가 아니라
시간에 남은 감정의 흔적으로 본다.
한 시즌만 지나도 ‘뜨거웠던 제품’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창고에 남는 걸 보며,
CFO가 감정을 놓치면 숫자만 남는다는 걸 배운다.
CFO라는 자리는 단순히 원가와 매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브랜드가 흘러가는 감정의 곡선을 읽어야 하는 시대다.
브랜드를 수치로 설계하는 것만큼
감정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 산업에서 살아남는 방식이다.
[다음 편 예고]
“브랜드가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는 이유 – 제품 수명과 감정 피로의 상관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