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조 브랜드 CFO 4편: 히어로 제품은 왜 사라졌는가

by Lucky Nine

[색조 브랜드 CFO 생존기] 4편

히어로 제품은 왜 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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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그랬다.

모든 유통 채널을 장악하고, 품절 사태를 만들고,

재입고 알림을 기다리게 하는 '히어로 제품'이 있었다.

브랜드가 힘이 없을 때도,

히어로 제품 하나가 그 브랜드를 먹여살렸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그런 제품이 '없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시장의 리듬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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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로서 내가 처음 마주한 건 수치보다 분위기였다.

매출 상위 제품이 빠르게 바뀌고,

히트 제품의 생명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어느새 히어로 제품은 등장하자마자 사라지고,

다음 후보에게 자리를 내주는 구조가 당연해졌다.

예전에는 하나의 제품이 한 시즌을 지배했다면,

지금은 하나의 시즌 안에서도

짧은 감정의 파도가 연달아 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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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히어로 제품은

정말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걸까?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히어로 제품이 사라진 게 아니라,

머무르지 못하게 된 시대가 온 것이다.

지금 소비자는 어떤 제품에 감정을 몰입하더라도

곧 다른 콘텐츠, 다른 영상, 다른 유튜버에 의해

주의가 흩어진다.

이건 브랜드가 잘못한 게 아니라,

시대의 구조가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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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히어로 제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

문제는, 예전의 방식으로는 이제 그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과거엔 제품력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제품 외적인 모든 요소—

콘텐츠, 언급 구조, 유통 속도, 타이밍—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히어로 제품의 성패는

감정의 밀도가 아니라, 감정의 지속 설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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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브랜드에서 선보인 한 제품은

꽤 잘 준비된 프로젝트였다.

사전 콘텐츠부터 바이럴 루트,

타이밍, 가격 포지셔닝까지 신중하게 짰고

초기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우리는 감정의 고점을 넘긴 시점에도

그 제품이 여전히 뜨겁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늦게 도착한 리오더 물량이

시장에서 방향을 잃은 채 남아버렸다.

그 제품이 실패한 건 아니다.

사람들은 제품이 아니라,

감정이 끝났을 때 떠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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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관리 교과서엔 이렇게 쓰여 있다.

손익분기점(BEP)은 고정비를 커버하는 최초의 매출 구간이다.

공식으로 쓰면,

손익분기점 매출 = 고정비 / (1 - 변동비율)

하지만 히어로 제품의 감정 곡선은

그보다 훨씬 빠르게 식는다.

우리는 BEP에 도달하기도 전에

감정이 꺼져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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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래프를 보면 이 구조가 더 명확해진다.

emotion_vs_sales_curve_english.png

- 감정은 출시 3~4주 차에 정점을 찍고 빠르게 하락한다.

- 매출은 BEP 근처에서야 속도를 낸다.

- 그 시점이면 소비자는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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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CFO인 나는

“이 제품 잘 나가요”라는 말보다

‘지금 감정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먼저 묻는다.

히어로 제품은 다시 나올 수 있다.

다만, 감정이 올라오는 속도와 식는 속도 모두를 인지하고,

그 시간에 맞춰 유통, 콘텐츠, 재고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브랜드만이 가능하다.

히어로 제품은 브랜드가 만든 결과가 아니라,

브랜드와 소비자가 함께 만든 순간의 농도다.

그 농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브랜드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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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예고

“숫자는 정확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

숫자만으로는 설득되지 않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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