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빨리’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빠른 결과, 빠른 성장, 빠른 회복.
하지만 삶은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속도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속도는 조절의 기술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속도로 걷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순간,
그때부터 진짜 나의 걸음이 시작됩니다.
움직임
속도를 의식하는 순간,
빠르게만 달려가던 속도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제야 진짜 움직임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내가 무엇을 따라 걷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움직임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정주하기보다 어디론가 향하고 싶어 하고,
고여 있기보다 흐르고 싶어 하고,
고정되기보다 생동하고 싶어 합니다.
단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움직임이 진짜 나의 의지인지,
아니면 습관과 타성의 반복인지를 구분할 줄 아는 것입니다.
시선
움직임은 시선을 필요로 합니다.
시선은 단지 외부를 보는 도구가 아니라,
내면과 외면 사이를 잇는 감각의 관문입니다.
어디를 보고 있는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를 자각할 때,
비로소 삶의 풍경이 확장됩니다.
감각
시선이 머무르면 감각이 깨어납니다.
빠르게 걷는 삶 속에서는 촉감, 냄새, 공기, 표정, 분위기...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흘려보냅니다.
감각은 머물러야 살아납니다.
감각이 살아나면, 삶이 다시 살아납니다.
질문
감각이 깨어나면서, 문득 질문을 품게 됩니다.
오늘 하루가 왜 이렇게 분주했는지,
조금 전 그 말이 왜 마음에 남았는지,
내가 무엇에 자꾸 시선을 두고 있었는지.
이런 작고 조용한 질문이,
삶을 바꾸는 가장 깊은 방향이 되기도 합니다.
질문은 혼란이 아닌, 명료함의 시작입니다.
질문이 있어야 삶은 방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록
질문을 품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기록하게 됩니다.
기록은 거창한 글쓰기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돌아봄, 머무름, 기억하기.
기록은 살아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시간의 기술입니다.
작은 흔적들이 모여 삶의 구조가 형성됩니다.
쉼
아무리 잘 걷고, 보고, 느끼고, 물어도
우리는 때때로 멈춰야 합니다.
그래서 어슬렁에는 쉼이 있습니다.
쉼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바쁘게 흘러가던 나의 리듬을
잠시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리처드 러드는 『The Art of Contemplation』에서
깊은 내면의 통찰은 잠깐 멈춤(Pause) – 전환(Pivot) – 통합(Merge)
세 가지 흐름을 따라 찾아온다고 말합니다.
내면에 쉼을 부여하는 것은 잠깐 멈춤(Pause)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틈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전환(Pivot)이 되고,
마침내 새롭게 깨어난 자각이 삶 전체와 통합(Merge)되는 것입니다.
어슬렁의 쉼도 이와 같습니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익숙한 패턴을 잠시 멈추고,
내면의 흐름을 다시 바라보며
삶과 연결되는 여백을 만들어 주는 시간.
쉼은 그래서 ‘행동의 중단’이 아니라
의식의 회복입니다.
조용히 머무를 수 있어야,
다시 나의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존재
그리고 쉼이 깊어지면 존재가 드러납니다.
하지만 존재는 단지 ‘발견되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존재는 내가 조용히 멈추고 나서야,
그 안에서 다시 ‘만들어갈 수 있는 나’로 열리는 가능성입니다.
릭 루빈은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조성은 무엇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다.”
존재는 어떤 결과나 성취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감도, 어떤 감정, 어떤 감각으로 살아 있는가에 대한 감지 상태를 의미합니다.
존재는 내가 되고 싶은 방식으로 지금 이 자리에 깨어 있는 것이며, 무엇을 할지보다 어떻게 머물고 있을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태도입니다.
닐 도날드 월쉬는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삶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존재는 무엇을 찾아내는 행위가 아니라,
나의 감각과 의식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다시 짓는 일입니다.
그건 아주 조용하고 느린 창조랄까요.
내가 머무는 방식이 나를 바꾸고,
그렇게 바뀐 나와 세상의 관계 맺기가 달라지는 것.
존재는 그렇게 창조되고, 매 순간 새롭게 창조될 수 있습니다.
어슬렁은 그래서 존재를 창조하는 걸음입니다.
한 걸음 멈추고, 조용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지금 내가 되고 싶은
나’로 다시 태어나는 가능성을 여는 연습.
우리는 발견되는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스스로 창조하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