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조율하는 리듬
속도가 전부인 시대, 어슬렁은 속도를 묻지 않고 리듬을 듣습니다. 그 리듬은 삶을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지금 나를 살피는 방식입니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세상입니다. 성과는 기다려주지 않고, 결과를 내는 속도가 곧 존재를 증명하는 기준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속도는 정말 내 속도일까?”
영어로 ‘속도’를 표현할 때, 흔히 ‘speed’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velocity’와 ‘pace’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speed’는 단순히 빠름을 뜻합니다.
얼마나 빨리 이동하는가를 의미할 뿐,
그 움직임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반면, ‘velocity’는 라틴어’vēlōcitās’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목표를 향해 효율적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움직임을 뜻합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speed 즉 속도가 아닌,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pace’는 라틴어 ‘passus’,
즉 걸음, 발자국에서 비롯됐습니다.
pace는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걸음과 걸음 사이의 리듬,
내 안의 호흡과 보폭을 지키는 움직임을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속도는 단순히 빠르고 느린 문제가 아닙니다.
speed는 빠름을,
velocity는 방향을,
pace는 나만의 리듬을 가리킵니다.
어슬렁의 속도는 이 셋을 구분하고,
그 위에서 나를 조율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해서도 속도로 인식합니다.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오늘은 시간이 잘 안 간다."
시간은 물리적으로는 늘 일정하게 흐릅니다.
하지만 각자가 체감하는 시간은 다릅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몰입(flow)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다."
몰입할 때, 시간은 찰나처럼 사라지고,
억눌리거나 지루할 때는 시간이 끈적하게 늘어집니다.
우리가 실제로 '사는 시간'은
시계의 숫자가 아니라, 마음이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삶의 밀도는 심리적 시간에 의해 결정됩니다.
많은 일을 해내더라도,
감각 없이 흘려보낸 시간은 우리 마음속에 남지 않습니다.
반면 짧은 순간이라도 온전히 몰입하고, 느낀 시간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습니다.
어떤 속도로 사느냐 보다,
어떤 리듬으로 체험하느냐가
삶을 살아 있게 만듭니다.
빠른 것은 잘못된 것만은 아닙니다.
느린 것이 꼭 옳다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적절 한가입니다.
한때 한국 사회는 '빨리빨리' 문화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한편 그 빠름은 우리에게 깊은 피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속도는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속도를 선택할 여유를 잃는 것입니다.
균형에 대해서도 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일상처럼 들립니다.
정시퇴근, 휴식, 일과 삶의 분리.
조직의 리더들은 때때로,
구성원들의 균형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현실을 감안하면 모든 걸 맞출 수 없다는 저항감 사이를 오갑니다.
그러나 균형은 완성해야 할 과제가 아닙니다.
균형은 끊임없이 조율하는 살아 있는 감각입니다.
완벽한 워라밸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대신,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리더 자신과 구성원 서로의 리듬을 살피고 조율하는 것.
속도도, 균형도,
결국은 살아 있는 움직임 위에서 만들어집니다.
빠르게 갈 때도 좋습니다.
천천히 갈 때도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리듬으로 걷고 있는지를
가만히 느껴보는 것.
어슬렁의 속도는
빠름과 느림을 넘어,
나를 조율하는 연습입니다.
지금, 당신이 걷는 속도는 누구의 리듬인가요?
앞으로, 당신은 어떤 리듬을 선택하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