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여덟 걸음. 둘,

갈림길에서 만난 행복

by 독립여행

움직임에는 항상 선택이 따릅니다. 정확한 방향이 없어도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 그 물음 속에서 나는 순례길의 갈림길 앞에 서 있었습니다.


팜플로나를 8km쯤 남겨둔 자발디카(Zabaldika)라는 작은 마을. 그곳에서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개천을 따라 새롭게 조성된 길, 다른 하나는 산길.

스페인어를 몰라 안내문을 정확히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길의 느낌은 분명했습니다.


새 길은 평탄해 보였고, 산길은 오르막에 거칠어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자꾸 산길을 향했습니다.

정보는 없었지만 감각은 그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동행에게 조심스레 산길을 택해보자고 말했더니,

그는 고맙게도 아무 망설임 없이 동의해 주었습니다.


막상 걸어보니, 그 길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습니다.

‘산길’이라는 단어에 먼저 반응했던 건,

어쩌면 내 안에 있던 막연한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걸었을 때, 작은 성당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13세기에 지어진 성 스페타노(San Esteban de Zabaldika)


낮은 언덕 끝에서, 한 신부님이 우리를 향해 따뜻하게 손짓하며 반겨주셨습니다.


성당 안은 조용했습니다. 낡은 목재 벤치, 작은 성상들, 어둠을 밝히는 몇 개의 양초,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성스러운 공간. 신부님은 말없이 두 장의 종이를 건넸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중 한 장에는 ‘순례자의 행복(The Beatitudes of the Pilgrim)’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종이를 읽어 내려가던 중,

문득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특별한 문장 때문이라기보다,

그 문장들 사이로 조용히 떠오른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 걸까?”


순례자의 행복을 읽으며,

길 위에서 복잡한 감정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방향을 잘못 잡았을까 불안했던 순간들,

지금 걷는 이 길이 맞는 걸까 끊임없이 생겨났던 의구심들,


그날의 걸음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나를 새롭게 연결시켜 주는 작은 실험이었습니다.

다시 갈림길에 선다면, 어떤 마음으로 걷게 될까요?




[ 순례자의 행복 The Beatitudes of the Pilgrim]

1. 행복하여라. 순례의 길이 눈을 열게 하여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음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2. 행복하여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에 마음을 두는 순례자여.


3. 행복하여라. 길을 명상할 때, 그 길이 수많은 이름들과 여명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4. 행복하여라. 진정한 길은 그것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5. 행복하여라. 배낭은 비어 있지만 마음은 풍요로운 느낌들과 벅찬 감동으로 가득한 순례자여


6. 행복하여라. 옆의 있는 것을 돌아보지 못하고 혼자서 백 걸음을 앞서 나가는 것보다는 한 걸음 뒤로 가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훨씬 가치롭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7. 행복하여라, 순례자여. 당신이 길을 벗어났거나 빗나갔을 때에도 놀라워하지 않고 그 모든 것에 감사한다면


8. 행복하여라, 순례자여. 당신이 만약 진리를 찾고 있고, 그 길에서 생명을 만들며, 자신의 삶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결국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을 찾기 위한 것이라면


9. 행복하여라, 순례자여. 당신이 이 길에서 참된 자기 자신을 만나고,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머물면서 마음속에 그 이미지를 잘 간직할 수 있다면.


10. 순례자여, 이 길이 큰 침묵을 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침묵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하느님을 만나는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대는 정녕 행복하여라!


갈림길에서 망설임
순례자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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