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보다 머무르기
지나가는 풍경은 많지만,
진짜 내가 바라본 장면은 얼마나 될까요?
눈은 열려 있지만, 마음은 닫혀 있는 날들.
어슬렁의 시선은 ‘더 많이 보세요’가 아니라,
‘조금 더 머물러 보세요’에서 시작됩니다.
흘러가듯 보는 일상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나요?
우리는 많은 것을 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많은 것’은 정말로 본 것일까요,
아니면 단지 스쳐 지나간 것일까요?
관심 있는 것만 눈에 들어오고,
나머지는 무의식 속을 흘러갑니다.
생각이 복잡한 날에는
사람의 얼굴도, 계절의 빛도,
회의실의 분위기조차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산책 중에도,
여행지에서도,
회의실에서도,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은 채’
그저 흘러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이 장면이
나의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말은 있고, 나는 없었다
회의실에서 발표를 하고 있었습니다.
말은 하고 있었지만, 나는 거기 없었습니다.
청중의 표정, 스마트폰을 보는 모습,
그 반응 하나하나에 생각이 휩쓸렸습니다.
그때,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발표는 끝났지만,
그 순간에 내가 제대로 머무른 기억은 거의 없었습니다.
자료를 넘기고 설명했지만,
내 안에서는 불안만이 점점 커졌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날은 열 명의 격려보다
한 사람의 무표정한 얼굴이
내 안의 시선을 끝까지 붙들고 있었습니다.
익숙함 속을 스치는 눈길
우리는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긴 것들만 스캔하며 살아갑니다.
익숙한 거리, 반복되는 사무실, 늘 마주치는 사람들...
보는 것 같지만, 어느새 그냥 지나칩니다.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는 『관찰의 인문학』에서 말합니다.
"사람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예상’과 ‘판단’을 보고 있다."
시선을 두는 방식은 곧, 내가 삶과 관계 맺는 방식입니다.
지금 이 순간 외에는 없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서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 외에는 당신이 가질 수 있는 현실은 없다.”
‘지금’이라는 감각을 회복하지 않으면
과거나 미래에 머물다 삶 전체를 놓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지,
그 자각의 순간이야 말로
삶의 감각을 다시 여는 첫걸음입니다.
낡은 풍경 속의 낯선 순간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오전 회의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익숙한 골목길을 지나던 중,
불현듯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붙은 오래된 포스터였습니다.
색이 바래고, 종이가 조금씩 일어난 모서리.
이 길을 몇 번을 지나쳤지만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습니다.
‘빛바랜 자신의 전시 포스터를 본 화가는 어떤 마음일까?’
그 안에는 여전히 어떤 이야기가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걸음을 멈춘 것도 아닌데
무언가가 내 안에서 조용히 멈추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내 시선이 바뀌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다시 열리는 시선의 풍경
호로비츠는 『관찰의 인문학』에서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같은 길을 걸으며 관찰 실험을 진행합니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걷자,
바닥의 소리와 진동이 길을 바꿉니다.
동물학자와 함께 걷자,
개와 새의 동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향 전문가와 함께 걷자,
평범한 거리가 수십 가지의 냄새로 구분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같은 길이라도,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
“세상은 보이는 만큼 존재하지 않고, 보는 만큼만 존재한다.”
이 말은 곧,
내가 어떤 시선으로 사느냐에 따라
내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시선이란?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장면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됩니다. 같은 상황도 시선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지면 그 순간의 감정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실수 앞에서 성급한 시선은 '이건 실패야'라고 말하지만, 살펴보는 시선은 '지금 어떤 과정을 겪고 있는 걸까?'라고 되묻습니다. 판단하는 시선은 '그건 옳고 이건 그르다'라고 재단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시선은 '그 안에 어떤 진심이 있었을까?'를 바라봅니다.
외부 중심의 시선은 '다들 나를 어떻게 볼까'를 묻지만, 내면의 시선은 '나는 지금 이걸 어떻게 느끼고 있지?'에 귀 기울입니다. 늘 같은 시선은 매일 걷는 길도 놓치지만,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은 오래된 벽의 포스터 하나에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성과 중심의 시선은 '얼마나 이뤘나?'에 집중하지만, 의미 중심의 시선은 '무엇이 남았고, 무엇이 깊었나?'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다섯 가지 시선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의 시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자각하고, 그것을 조금씩 조율해 보려는 마음입니다.
어슬렁의 시선은 바로 그 자리에 머무릅니다. 더 많이 보기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물러 보는 것. 그 안에서 삶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머무르는 시선이 여는 감각
우리는 종종 ‘더 많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얼마나 ‘충분히 머물러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시선을 머문다는 건
무언가를 억지로 보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눈앞에 있는 것을 다시 보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바깥의 장면과 내 안의 리듬이 잠깐이나마 나란히 흐릅니다.
그래서 어슬렁의 시선은
보지 못한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친 것을 잠깐 멈춰서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그 연습은 곧,
내 안의 감각이 다시 깨어나는 시작점이 됩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왔나요?
앞으로는 무엇을, 어떤 눈길로 오래 바라보며 살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