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걸음, 기록.

지나치치 않기 위한 태도

by 독립여행

지나치지 않기 위한 태도


어떤 장면은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워 마음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때의 공기,

멈췄던 발걸음,

그 순간의 나.

기록은 남기려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의 표시입니다.


지나치지 않기 위한 연습


기록은 ‘무언가를 남기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지나치지 않기 위한 태도’입니다. 하이데거는 “기억은 존재를 구성하는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억은 방대한 정보의 축적이 아닌,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어슬렁의 걸음에서 기록은

‘붙잡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흘려보내지 않기 위한 의도’입니다.

기록은 순간을 고정시키기보다,

그 순간에 진짜 내가 있었음을 잊지 않게 해 줍니다.


일터에서 오늘 나를 힘들게 한 말, 애써 넘긴 불편함, 기뻤지만 표현하지 못한 장면은 문서도, 회의록에도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것들이, 나를 가장 선명하게 말해주는 순간입니다.


기록은 그런 감정의 '사각지대'를 비추는 일입니다.


감정이 다시 연결되는 순간


기록은 감정을 정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느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방식입니다.


때로는 질문이 올라옵니다.

‘왜 이 일만 나에게 반복되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을 떠올리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질문을 흘려보내지 않고,

종이에 남겨 두는 데는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록하려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 나의 상태, 그리고 그 안에서 스쳐간 작은 통찰입니다. 기록은 감정을 해소하는 행위가 아니라, 감정을 인식하는 연습입니다. 그 연습이 쌓이면, 우리는 나 자신과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조금 더 명료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한 방식으로


사람들은 흔히 일상을 “기록해야지”라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막상 무슨 글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잘 쓸지 몰라서 시작조차 못하곤 하죠.

그럴 땐, ‘기록’의 정의를 바꿔보면 좋습니다.


사진 한 장을 찍는 것도 기록이고,

무심코 멈춰 섰던 순간도 기록이고,

친구에게 보낸 톡 하나도,

걸으며 중얼거린 혼잣말도 기록입니다.


『기록이라는 세계』에서 리니는 말합니다.

“기록은 기억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한 연습이다.”


교육 이론가 제이 맥타이와 그랜트 위긴스는 좋은 질문이란, 즉각적인 해답을 찾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유를 지속하게 만드는 자극이라고 말합니다.


기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정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과 감정의 여운 속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르기 위한 실천입니다.


기록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만나는 공간입니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도,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도 필요 없습니다.

그 순간 내 마음에 남아있는 감각,

문득 떠오른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마음으로 기록을 해왔나요?

앞으로는 기록을 통해 어떤 순간들을 더 오래 기억하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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